유월이 오면 가슴 한 곳이 저며 온다. 왜일까. 비 그친 후 맑은 바닷바람이 상큼한 아카시아 향내를 흩날리며 달려오건만 엄마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말수가 적어진다. 오빠의 기억이 상처가 되어 덫 나듯 가려워지는 모양이다. 오랜 사진첩 속 오빠는 아직 이십대다. 엄마의 기억 속 오빠도 이십대에서 멈춰있을 거라 생각하면 아프다.
전쟁의 상처는 누구나 지울 수 없는 아픔이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이란과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쟁을 두고 보도 중이다. 어느 한쪽도 이길 수 없는 싸움, 수많은 고아와 죽음을 양산해내는 저 불지옥의 싸움을 멈출 수는 없나. 세상은 다양화의 변화를 타고 살아가는 방식 또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강한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식은 잘못된 신의 유산이다.
엄마는 “죽지 못해 사니 살아지더라”라고 가끔 아들을 먼저 앞세운 삶의 죄책감을 혼잣말처럼 되내이곤 한다. 부추를 다듬거나 머위 껍질을 벗길 때나 뭔가 집중해야 할 때 더욱 혼잣말이 많아지는 것은 상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잊을 만하면 돌아와 잊지 못하는 것도 생의 업일진대 엄마라고 그 업을 쉬 벗을 수, 벗길 수 있을까. 돌아보면 오빠의 기억도 흐릿한데 엄마의 기억 속 오빠는 아직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나라는 6.3 지방선거를 치루느라 한차례 홍역을 겪었으니 잦아들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오직 일등만을 뽑는 자리여서 당선된 한 사람 외에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우리는 일어서 가야할 길이 남아 있지 않은가. 공약으로 혹은 지역에서 그동안 나름 노고와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자만이 뽑힌 자리이니 모두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자. 상처가 된 자에게는 위로와 다음이라는 차표를, 당선인에게는 국민을 위해 열심히, 잘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고 밀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팔순을 넘기신 엄마는 요즘 마을회관을 다녀와선 많은 생각들이 엉키시는지 종종 말을 꺼내주시곤 한다. 살다보니 별꼴을 본다는 말을 하실 땐 나 역시 가슴이 미어지곤 한다. 오빠의 성장을 함께한 마을 다른 어르신께서 오빠의 어릴 적 이야길 꺼낸 아픈 상처를 건드리신 모양이다. 가슴 바닥에 눌러 두었던 감정의 싹이 뚝, 하고 부러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엄마의 젖은 눈시울이 유월이 오면 도지는 고칠 수 없는 병 같아 때론 마음 한구석이 미어지곤 한다.전쟁이라는 난리를 겪었으니 많은 가정이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조금 더 깊은 생각과 배려로 함께 상처를 감싸주는 유월이길 기대해 본다.
지역별 보훈처에선 해마다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유공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위로와 감사를 전한다. 담당 업무를 떠나 노고와 수고를 아끼지 않는 여러분들께 글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모든 상처를 지울 수는 없겠으나 잊지 않고 챙기며 함께 동행하는 길을 찾아 부축하고 살 수 있도록 챙겨 주는 일이야말로 그 분들께는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아플 때 찾아와 손을 잡아주고 걱정해 주는 이웃이 있어 우리는 살아가는 거다.
성장한 손주들이 오월에 있는 엄마의 생일에 찾아왔다. 건강을 묻고 그동안 풀지 못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늦은 밤이 졸린 눈을 씀벅거릴 때 엄마는 편안한 늦저녁 잠을 청하셨다. 물론 아침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일어나셨지만 모처럼 가슴 한구석 상처를 비우셨나보다. 이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나라가 그들을 챙겨야하지 않겠는가. 현충일 행사가 티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저 다짐들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내보이고 있으니 이젠 안심이다.
주말이 지나는 길목에 엄마는 화장을 고치고 있다. 아버지를 만나고 모처럼 오빠도 볼 생각이라며 꽃단장이 한창이다. 유월의 아픔이 기다림처럼 만남이 되고 화해가 되고 용서가 되는 달이기를 꿈 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