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n뉴스=서천] 권주희 기자 = 인적조차 드문 충남 서천군 앞바다의 작은 무인도가 전 세계 조류 학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생명의 성지’로 화려하게 비상했다.
점처럼 작은 바위섬에 불과했던 ‘노루섬’이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새들을 넉넉히 품어 안으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국제적 멸종위기종 번식지로 우뚝 섰다.
서천군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기후생태환경분과위원회(이하 서천지속협)는 지난 2일, 환경부 특정도서로 지정된 마서면 노루섬과 인근 검은여 일대에서 전개한 ‘국제적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한 2차 조류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며 벅찬 감동을 전했다.
충남연구원 정옥식 박사와 서천지속협 전홍태 위원, 홍성민 국장이 직접 배를 타고 나선 이번 조사에서는 노루섬의 독보적인 생태적 가치를 증명하는 경이로운 수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먼저 조사단의 탄성을 자아낸 것은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노랑부리백로(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천연기념물 제361호)의 눈부신 날갯짓이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단 4,000~6,000마리만이 힘겹게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이 극도로 희귀한 새가 노루섬 한 곳에서만 무려 114개체나 확인된 것이다.
이는 지구상에 남은 전체 노랑부리백로의 약 2%가 오직 이 작은 섬 하나에 운명을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20년 첫 조사 당시 23개체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5배 이상 폭발적으로 급증한 기적 같은 성과다.
주걱 모양의 독특한 부리를 가진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1호)의 번식 열기 또한 뜨거웠다.
노루섬에서만 480여 개체가 관찰되며 2020년(84개체) 대비 5배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전 세계 저어새 개체수의 약 5%가 둥지를 튼 셈이다.
여기에 인근 검은여 일대에서도 저어새 42개체와 천연기념물 검은머리물떼새 25개체가 유유자적 노니는 모습이 확인되며, 이 일대 연안 전체가 국제적 멸종위기 조류를 지탱하는 대체 불가한 ‘핵심 생태 거점’임이 완벽하게 입증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차가운 통계 수치 너머,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생명의 서사시가 카메라 렌즈에 고스란히 담겼다.
조사단의 망원 렌즈 속으로 지난 2020년 이곳 노루섬에서 태어나 앙증맞은 발목에 인식 가락지를 달고 먼 길을 떠났던 저어새 한 마리가 포착됐다.
‘Y89’라는 번호를 달고 거친 자연을 이겨낸 어린 새는, 어느덧 늠름하고 당당한 성조(成鳥)가 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번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갯바위 위에서는 붉은 눈동자와 선명한 주황색 부리를 매섭게 빛내며 위용을 과시하는 검은머리물떼새의 역동적인 모습이 잇달아 포착되며, 생명이 박동하는 노루섬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이토록 좁고 척박한 무인도에서 어떻게 이 거대한 생명의 잔치가 열릴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둥지와 갯벌이 빚어낸 완벽한 ‘생태 앙상블’을 꼽는다.
정옥식 충남연구원 박사는 “노루섬에서 이처럼 경이로운 대규모 번식이 가능했던 결정적 비결은 바로 지척에 자리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서천갯벌’과 ‘새만금 수라갯벌’의 존재”라고 단언하며, “새들이 천적을 피해 둥지를 틀고 새끼를 품는 아늑한 요람은 노루섬이지만, 그 주린 배를 채우고 어린 새들을 살찌울 수 있도록 끝없는 만찬을 내어주는 주·야간 생명의 식탁이 바로 저 드넓은 두 갯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화려한 비상 이면에는 위태로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홍성민 서천지속협 사무국장은 멸종의 벼랑 끝에 선 생명들을 향한 관계 당국의 절박한 관심을 촉구했다.
홍 국장은 “현재 멸종 위험이 극도에 달한 노랑부리백로의 전 세계 개체수 중 무려 2%가 이 작은 노루섬 단 한 곳에 생존의 명운을 걸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하며, “그간 저어새의 유명세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노랑부리백로와 그들의 서식 환경을 지켜내기 위해 국가 차원의 실효성 있고 시급한 보전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우리가 서천 노루섬을 지켜내는 것은 단순히 섬 하나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천갯벌에서 새만금 수라갯벌로 이어지는 서해안 연안 생태축 전체의 핏줄을 지켜내는 가장 숭고한 일”이라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연안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묵직하게 던졌다.
지구촌이 주목하는 멸종위기종의 위대한 요람, 서천 노루섬의 푸른 깃짓이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절실한 관심과 지혜가 모여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