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의 땡볕은 붉다. 땡볕의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온 몸으로 맞아야하는 밭작물들이 견디고 있다. 비인에 볼일이 있어 차를 몰고 수로 길을 나서는데 어느새 불길을 뚫고 일어선 흰참깨꽃이 환하다 못헤 맹렬하다. 한여름의 땡볕을 극복하려고 참깨 씨를 꽉 깨문 씨통이 대견하다. 우리네는 어떨까. 농촌의 특성상 어르신들의 여름은 지루하도록 가혹하다. 바깥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신체적 불편이 그렇고 또는 홀로 혹은 개나 고양이와 지켜내야 하는 외로움이 더더욱 그렇다. 지역사회의 농촌은 한계가 있다. 객지로 떠난 자식들에게 한 편의 전화라도 받는 것이 이제는 즐거움樂이 될 나이. 나 역시 일을 하고 있어 업무상 타동네 어르신들을 자주 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땡볕 여름을 건너는 법을 잘 전하진 못한다. 그렇다하더라도 돌아보고 싶은 것은 아직 나에게도 팔순의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동네를 돌아 나오는데 장마에 대비한 공사가 여기저기 진행 중이다. 지금이 장마인데 부디 피해 없이 지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도시가 도시를 연결하는 작업으로 첫걸음이 도로개설이다. 그러다 보니 지방도로의 폭이 좁고 구부러져 비효율적인 구간이 잔존한다. 새로 나는 도로를 현실적으로 설계
유월이 오면 가슴 한 곳이 저며 온다. 왜일까. 비 그친 후 맑은 바닷바람이 상큼한 아카시아 향내를 흩날리며 달려오건만 엄마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말수가 적어진다. 오빠의 기억이 상처가 되어 덫 나듯 가려워지는 모양이다. 오랜 사진첩 속 오빠는 아직 이십대다. 엄마의 기억 속 오빠도 이십대에서 멈춰있을 거라 생각하면 아프다. 전쟁의 상처는 누구나 지울 수 없는 아픔이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이란과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쟁을 두고 보도 중이다. 어느 한쪽도 이길 수 없는 싸움, 수많은 고아와 죽음을 양산해내는 저 불지옥의 싸움을 멈출 수는 없나. 세상은 다양화의 변화를 타고 살아가는 방식 또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강한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식은 잘못된 신의 유산이다. 엄마는 “죽지 못해 사니 살아지더라”라고 가끔 아들을 먼저 앞세운 삶의 죄책감을 혼잣말처럼 되내이곤 한다. 부추를 다듬거나 머위 껍질을 벗길 때나 뭔가 집중해야 할 때 더욱 혼잣말이 많아지는 것은 상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잊을 만하면 돌아와 잊지 못하는 것도 생의 업일진대 엄마라고 그 업을 쉬 벗을 수, 벗길 수 있을까. 돌아보면 오빠의 기억도 흐릿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