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늘 낮은 데서
먼저 누워 세상의 무게를 견딘다
말보다 깊고, 슬픔보다 먼저 젖는다
우리가 걷는 땅 아래엔
말 없이 흘러내리는 울음이 있다
한 번도 닿지 못한 뿌리들이
조용히 엇갈려 스며든다
분단이라는 말은
누군가의 입술에서 나왔지만
그 여운은 흙 깊은 곳에 스며
강물의 길을 바꾸고
지붕들은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
내 시선은, 가장 낮은 틈에 머문다
가장 깊이 파인 골짜기에서
먼저 피어나는 꽃을
철조망이 휘어진 자리마다
돌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순한 생명을
흙은 늘
누구의 선도 기억하지 않는다
비는 구분 없이 젖게 하고
바람은 어느 쪽에도 머물지 않는다
통일은
지도 위에서 이뤄지는 약속이 아니라
흙이 매일 보여주는 일처럼
서로 스며들고, 엉기며
어디서부터였는지 잊히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