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문단(文壇)] 흙의 언어

  • 등록 2025.12.26 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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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늘 낮은 데서

먼저 누워 세상의 무게를 견딘다

말보다 깊고, 슬픔보다 먼저 젖는다

 

우리가 걷는 땅 아래엔

말 없이 흘러내리는 울음이 있다

한 번도 닿지 못한 뿌리들이

조용히 엇갈려 스며든다

 

분단이라는 말은

누군가의 입술에서 나왔지만

그 여운은 흙 깊은 곳에 스며

강물의 길을 바꾸고

지붕들은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

 

내 시선은, 가장 낮은 틈에 머문다

가장 깊이 파인 골짜기에서

먼저 피어나는 꽃을

철조망이 휘어진 자리마다

돌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순한 생명을

 

흙은 늘

누구의 선도 기억하지 않는다

비는 구분 없이 젖게 하고

바람은 어느 쪽에도 머물지 않는다

 

통일은

지도 위에서 이뤄지는 약속이 아니라

흙이 매일 보여주는 일처럼

서로 스며들고, 엉기며

어디서부터였는지 잊히는 일이다

박강현 시인(한국문인협회 서림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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