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은 자신과 세상의 너른 품을 헤아리는 독수리의 눈이요, 내면의 심연과 사물 뒤편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이다.
그로써 삶의 뿌리와 세상의 본질을 캐내는 지혜의 곡괭이다. 사색의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복잡하게 얽힌 생각과 경험의 겹겹을 뚫고 들어가, 혼돈 속에 숨겨진 진실과 의미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사색은 물음표 하나에서 시작된다. 만약 사색이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면, 질문은 어둠을 밝히는 나침반이자 새벽 별과 같다.
질문이 없는 길은 눈 가린 아이처럼 제자리를 맴돌거나 엉뚱한 들판을 헤매게 만든다. 질문만이 사색이 나아갈 길을 밝히고,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존재의 이유이다. 하나의 답이 잠시 갈증을 달래줄지라도, 그 답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선 또 다른 물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물음의 꼬리가 다시 물음을 낳아 조금씩 진리에 다가가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가는 발걸음처럼 조심스럽고 끈질기다.
사색은 이성의 정원에서 피어나는 대화이면서도, 동시에 직관의 샘에서 솟아나는 감성의 영역이다. 사색의 경험이 쌓일수록 직관은 예리한 통찰의 빛이 된다.
마치 바둑의 명인이 복잡한 판세 속에서 수많은 길을 헤아리기보다, 오랜 세월 쌓인 경험과 무의식의 패턴으로 다음 수를 직감하듯 말이다.
칸트의 말처럼, 직관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니, 사색이란 결국 마음과 머리가 어우러지는 춤판과 같다.
그러므로 가장 아름다운 사색은 균형 잡힌 이성의 등불과 감성의 샘물로 자신과 삶을 깊이 이해하고, 변화와 성장의 씨앗을 틔우는 것이다. 사색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연습과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보석이다.
질문의 활을 당기고, 검증의 화살을 쏘는 훈련을 통해 단련될 때 비로소 거친 삶의 바다를 헤쳐 나갈 굳건한 지혜의 노(櫓)가 될 수 있다.
사색하지 않는다면 사물의 겉모습에만 매달려 핵심을 놓치기 쉽다. 나아갈 방향을 잃고 자신의 잠재력을 펼치지 못하는 황량한 삶이 될 수도 있다.
정보의 물결이 넘쳐나는 오늘날, 생각이 짧은 이들은 그 정보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 유언비어의 바람에 흔들리고, 고정관념과 편견의 좁은 울타리에 갇히게 된다.
그리하여 대수롭지 않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소중한 것을 흘려보내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고, 그 상처가 자신의 사유 부족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또한 사색은 비교하고, 나누고, 연관 짓는 분석의 과정이다. 깨달음의 성과를 얻으면 더욱 깊이 생각의 뿌리를 내린다.
그 안에는 처음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진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물음과 검증의 실타래를 풀어가며 막연히 느꼈던 감정들이 선명한 형상으로 드러난다.
사색의 길은 때로는 끝없이 펼쳐진 미궁과도 같다. 생각의 안내자를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갈림길과 만나고, 그 길마다 끝없이 뻗은 샛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이라는 안내자는 너무나 빨라서 때론 미처 따라잡지 못해 길을 잃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완벽히 사색할 수 없고, 단 한 가지를 죽을 때까지 궁리한다 해도 그 끝에 다다르기란 불가능하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여러 갈래의 사유의 강을 깊숙이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다. 반면 단순한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눈에 보이는 표면만을 보고 만다.
하지만 아무리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 지점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동안 본 것만으로 만족하며, 인식의 빈자리를 채워나가며 사물의 의미를 정의한다.
그러나 이를 비웃거나 나무랄 필요는 없다. 그 누구도 세상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사색하고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때, 짧고 어리석은 본성만으로 즉흥적인 행동을 저질러 어이없는 실수를 반복할 때, 평소 삶의 지침이라 믿었던 등대가 그 순간 힘을 잃고 희미해질 때, 순간순간 변해가는 감정의 파도가 이성의 둑을 넘을 때, 나는 부끄러워진다.
일상에 쫓기다 보면 눈앞의 일에만 매달려, 자신을 가라앉히고 깊이 생각에 잠길 틈을 갖지 못한 채 하루를 마쳐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나조차도 납득되지 않는 변명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사색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소중한 깨달음들이 손에서 빠져나간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져도 쉽사리 사색의 문을 열지 못하거나 엉뚱한 일로 시간을 흘려보내기 쉽다.
이처럼 정신이 닳아 없어지고, 영혼이 길들여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사색의 곡괭이를 다시 꺼내 들고, 그날을 예리하게 갈아야만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