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엘리제를 위하여’ 가 트럭의 후진을 돕고 있다.
바람은 냉담 중인데 길섶의 오동나무는 책장처럼 부스럭거린다.
마당으로 나와 바라보다 대문을 열고 다가가니 이삿짐을 싣는 중이다.
이 엄동설한에 이사라니!
누구나 살면서 정착을 꿈꾸지만 정작 지내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처를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넓은 집으로 가거나 계획한 바를 어느 정도 이룬 마음으로의 이사라면 오죽 편할까마는 오늘처럼 추운 날에 이삿짐을 꾸리고 싣는 것은 편치 않은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그동안 자유롭게 왕래하며 지내진 않았어도 이웃의 떠나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짠하여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짐 싣는 인부들 몫까지 다섯, 여섯 커피, 잔을 세팅해놓고 커피를 분담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왠지 긴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바깥의 소란스러운 발걸음들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고 싶은지 기웃거릴 때 커피포트의 물이 끓기 시작한다.
서둘러 쟁반을 들고 나가 소리쳐 본다. 커피 들고 하세요!
한때 서울에 살면서 전세를 산 적이 있다.
내 집이 아니고 빌려 쓰는 처지가 되고 보니 이웃과 가깝게 지내기엔 왠지 서먹하여 상처를 입고 풀숲에 숨은 짐승처럼 조용히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이삿짐을 빼느라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락거리는 찬바람을 맞으며 낯익은 고양이가 이별을 아는지 울고 있다.
이처럼 서서히 농촌이 소멸을 향해가는 날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디로 가세요?” “아, 네 공장으로 발령이 났당게요” 발령지가 어딘지 목적지를 머뭇거리는 그에게서 더는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뒷말을 삼키며 나는 돌아섰지만, 인력마저 AI로 대체되고 공장의 자동화 역시 로봇이 대체 수단으로 활용되다 보니 세상은 점점 간략해지면서 지능적으로 되어간다.
커피, 잔을 들고 사십 대에 다문화 가정을 꾸린 그를 바라본다.
발걸음이 무거운 듯 짐을 싣고 대문을 잠그는 걸 보니 가슴이 아프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한 해를 보내고 맞으며 느슨해진 내 영혼을 깨우고 싶어 올해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리스트를 작성한 적 있다.
계획을 써 내려가다 멈춘 것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될까? 하는 조바심과 노파심이었다.
그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 짐을 싣느라 아침인데도 켜 놓은 불빛이 큰 눈을 슴벅이며 나를 향해 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유리창에 다가가 귀를 가까이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 트럭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트럭 보조석에 앉은 그와 무릎에 앉은 계집아이가 뒷유리에 손을 흔든다.
잘 가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커피잔 놓은 손을 들다 왼손을 들어 화답한다.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잘하던 아이는 골목에서 마주치면 늘 먼저 인사를 하곤 했다.
누구에게나 그랬지. 나는 왜 이웃에게 그렇지 못했을까.
서울살이를 되돌아본다.
누구나 정착을 꿈꾸는 것은 그만큼의 성공을 예감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아쉬움으로 그의 어깨가 구부러져 있다.
아직 왜 보지 못했을까.
떠나는 뒷모습에 시린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데 나는 이제 또 어떤 기다림으로 살아갈까? 저 빈집에 들어설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