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화의 소중한 이야기] 삶의 네 가지 얼굴

  • 등록 2026.02.26 20: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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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따스한 봄날, 어린 가지 위에 자리 잡고 자라기 시작한 나뭇잎은 햇빛을 흡수해 스스로 필요한 양분으로 바꾼다.

 

하늘과 땅에 흩어진 무형의 기운을 모아 유형의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능력은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다.

 

이렇게 얻어진 에너지는 여러 먹이사슬과 생체 합성 작용을 거치면서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처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뭇잎 하나에도 우주의 신비가 숨 쉬고 있다. 사람들도 이런 자연의 모습을 흉내 내 본다.

 

옛날 도인들은 단전호흡 같은 수련법으로 기운을 받아들이고 축적하여 병 없이 오래 살았다고 전해진다.

 

최근에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 주변에서 이런 수행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만약 단전호흡 등으로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단계를 넘어 도술의 지극한 경지에 이른다면, 인간도 광합성과 비슷한 것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하다면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을 테니, 아마 옛날 신선들은 그랬을 법도 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털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광합성 공장을 만들고 다양한 영양소를 값싸게 무궁무진하게 공급해 줄 수 있게 된다면, 1차 산업인 농업이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그로 인해 인류의 삶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의 능력은 한 조각 나뭇잎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저 열심히 농사지어 끊임없이 먹고 소화시켜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다툼과 늙음, 환경오염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불행은 광합성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채 유한한 존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함에서 시작된다.

 

2. 여름 뜨거운 여름 내내,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는 나뭇잎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생명의 신비처럼 꽃이 피어난다. 벌과 나비의 춤 속에서 꽃은 열매를 맺고 결실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 또한 삶의 현장이나 가정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맡은 채, 힘써 일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미래의 삶을 준비한다.

 

그 노력의 열매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넓은 집으로 이사 갈 계획을 꿈꾸며, 가족과 함께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꿈과 사랑을 좇아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헤매기도 한다. 여름날의 잎사귀처럼 우리의 젊음과 힘이 삶을 빛나게 한다.

 

마흔이라는 불혹의 원숙함은 짙푸른 녹음처럼 산천에 영양을 공급하며 머무는 자리마다 활력으로 가득 채운다.

 

잎사귀의 찬란한 여름처럼 힘 있고 뜻있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순간이다. 모든 절정은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가을 이윽고 햇살이 약해지는 가을을 맞으면 열매는 무르익어 그 씨앗을 땅에 흩뿌린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현재를 마무리하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삶의 역전을 이뤄낸 용사들은 서서히 늙어간다. 날렵하고 싱그러운 몸매를 자랑하던 나뭇잎도 더 이상 할 일을 찾지 못한다.

 

엽록소가 빠져나가 얼굴은 술 취한 듯 붉어지고, 윤기 흐르던 피부도 거칠어진다. 마지막 삶을 불태우려는 듯 온 산은 단풍으로 붉게 타오르고, 그 불꽃 속에서 화려했던 추억들도 하나둘 사라져 간다.

 

마침내, 무정한 바람이 몸을 몹시 때리는 날, 힘겹게 매달려 있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내리고 만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보다 더 가벼운 공기 속을 헤치며 하강하는 짧은 순간의 비행은 마치 위대한 예술가의 최후의 걸작을 대하는 듯 감동적이다.

 

방금 떠나온 나뭇가지에는 지난 여름날의 뜨겁던 정열과 화려하게 몸을 불사르던 단풍의 추억이 배어 있다. 짙어가는 가을을 배경으로 자유 낙하하는 몸뚱이는 둔중한 첼로의 활처럼 좌우로 흔들거린다.

 

드디어 차가운 땅 위에 착륙하여 편안히 몸을 눕히면 모든 것은 과거 속에 묻히고, 자신이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음을 깨닫게 된다.

 

몸의 온기가 식어가고 모든 수분이 날아가면, 낙엽의 영혼은 사라지고 메말라 텅 빈 몸뚱이만 박제가 되어 남는다.

 

그러나 이는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순환을 위한 해체이며 완전한 사라짐이 아닌 잠재적 부활의 약속이기도 하다.

 

4. 그리고 그 낙엽 위를 내가 밟으며 지나간다. '사그락~' 소리를 내며 부서져가는 네 몸을 기억하며 네 추억에 내 가을을 더한다.

 

너의 다함에서 새로운 사랑이 다시 피어나기를 빌며, 부서진 너를 뒤로한 채 멀어져 간다. 내 흔적은 너의 부서짐으로 남고, 어느 날 바람에 날려 허공 속으로 이름 없이 사라지리라.

 

너의 짧은 순환처럼 나 또한 언젠가는 돌아갈 것임을 생각하며 가을 속을 걷는다. 내가 떠나간 길을 내 아이들이 이어 가고, 그들이 또 낙엽을 밟으며 걷게 되리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예비하며, 예전에 누군가 이 길을 걸었듯이.

강석화 시인(한국예총 서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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