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문단(文壇)] 이렇게 가고 싶다

  • 등록 2025.05.10 00: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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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죽는다면

꼭 죽어야 한다면

 

청명하다 못해 시린 하늘가에

코스모스 기웃거리며 가을날을 여미게 할 때

슬퍼할 식솔도 모르게

저 세상으로 가고 싶다

 

썩어 없어질 육신 끌고

이 병원 저 병원 링거 꽂아놓고

연명하고 싶지 않다

그저 정갈한 작업복 입고

 

벌들이 돔부꽃을 거쳐

벌통 안으로 잠자리 들어갈 때

책상 위에 아내에게 편지 남기고

없는 듯

욕심 없이 살아 모은 푼돈

마지막 가는 길에 쓰고 남으면

 

내 사랑하는 제자들

전시회 한 번 열라고

도록값으로 지불하고 싶다

 

쓰던 벼루 붓 몇 자루

관에 넣고 하늘로 가서

 

맑은 날 아침

이슬 받아 벼루에 놓고

맑은 마음으로 먹을 갈고

넓은 하늘가 구름 위에

난 향기 가득한

그림 한 폭 그려

 

기러기 날아가다 찢어 놓은

구름가에 걸어두고 싶다

최명규 원장(서천문화원장/대한민국예술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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