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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가을은 글의 계절: 잎사귀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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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무처럼 살아간다(리즈 마빈Liz Marvin)’이란 책을 읽는다.

 

책의 서문은 ‘나무는 정말 놀라운 존재다.’로 시작한다.

 

내용을 정리하면, 나무는 대략 4억 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 왔고, 그 기간 많은 지혜를 쌓아왔다.

 

그러니 우리는 나무에서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가을의 나무는 역시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아닐까.

 

저자는 단풍나무를 ‘시작은 비록 미약할지라도’라는 어구로 설명한다.

 

아마 짙은 초록을 빨갛게 차츰 물들이는 지난한 과정을, 그로써 가을의 절경이라는 수식을 받는 단풍나무를 표현한 것일 테다.

 

은행나무는 ‘누구도 완벽하진 않다’라는 어구로 설명한다. 샛노란 은행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말의 의미는 자연히 알 수 있다.

 

땅에서 2억 년 넘게 살아온 은행나무, 원자 폭탄 투하라는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는 은행나무, 화사한 노랑으로 가득 채우는 은행나무, 구수함보다 구릿함이 잘 어울리는 은행나무이기 때문이다.

 

가을, 누구나 낭만을 찾을 수 있는 계절.

 

이즈음에는 다양한 사생대회와 백일장 대회가 열린다.

 

문예 대회 담당이자 국어 교사인 나에게는 이 계절이 가장 재빠르게 지나갈 수밖에 없다.

 

충남청소년문학상, 월남문화제 청소년 글짓기, 신석초 백일장, 동백 백일장 등의 행사가 가득하다.

 

2학기에 들어서 아이들과 다양한 문예 창작 활동을 진행하였다.

 

이를테면 ‘나의 사랑하는 생활(피천득)’ 패러디 글쓰기, 노래 가사 소개하는 글쓰기, 문학적 표현을 활용하여 엽서 쓰기 같은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는 마냥 행복했다. 또 어떤 아이들이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하고 설렜다.

 

묵묵했던 아이의 글에서는 진솔함이 나왔고, 왁자지껄한 아이의 글에서는 세심함이 나왔고, 엉뚱 발랄한 아이의 글에서는 걱정스러움이 나왔고, 거침없는 아이의 글에서는 사랑스러움이 나왔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의 문예 창작 활동은 아이들과 함께 백일장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만들어냈다. 솔직히, 세속적인 생각이 들러붙었다.

 

이번에도 상을 많이 받게 해야지,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야지! (우습게도) 거의 대형 출판사의 편집자라도 되는 듯 생각했다.

 

구차하게 변명이라도 해보자면, 2020년 신규 교사로 임용되어 안면고등학교에서 근무하였을 때, ‘2충1효 전국 백일장 공모전’에 열댓 명의 아이와 함께 참여하였다.

 

그때 전원 수상을 하게 된 아이들 덕분에 우수지도 교사 표창을 받게 되었다.

 

앞으로도 좋은 상, 많은 상을 받아와야만 할 것 같은 짐을 지게 되었다.

 

충남청소년문학상을 위해 아이들을 지도하며 놀라움을 체감했다.

 

용준이는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서 소재를 발견하고, 투박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특별했다.

 

‘길가의 할머니는/주름진 손으로 나물을 쓰다듬습니다…느슨한 움직임 뒤엔,/말 사이가 헐거워지는 한숨이 따라옵니다./‘아이고, 힘들다…’’, 우준이는 스스로 보듬는 능력과 공동체의 가능성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별했다. ‘나는 너를 만나고, 너는 나를 만나/우리가 되었네.//불같은 너를 만나니/어두웠던 내 매일에 밝은 빛이 드리우고,/조용했던 내 하루엔 타닥타닥 소리가 가득하네.’

 

신석초 백일장에서 아이들을 인솔하며 새로움을 발견했다.

 

시우는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그의 인생에 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정감을 내세웠다.

 

‘눈물에 맛이 있다면/어떤 맛이 날까?…할머니의 눈물에서는/오미자 맛이 나겠지//죄송해요, 할머니’. 관규는 자신의 꿈과 기울이는 노력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며 특유의 당당함을 내세웠다. 서진이는 아버지에 감사함과 가장의 무게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며 진실함을 내세웠다.

 

동백 백일장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며 배웠다.

 

시호는 지구의 날에 하는 지구촌 불 끄기 캠페인을, 대황이는 제로웨이스트 생활 습관과 친환경 마을을 활용하여 산문을 썼다. 문제를 파악하는 것과 현실을 미래로 연결하는 것,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적인 관점이 돋보였다.

 

용준이는 동백꽃에 비유하여 가족의 의미를, 의철이는 돛단배에 비유하여 ‘만약에’라는 단어의 의미를 시로써 표현했다. 문학적인 표현 능력이, 또한 의미를 도출해 내는 능력이 기특했다.

 

몇 번의 백일장을 또 몇 번의 문예 수업을 함께할 수 있을지는 미연이지만, 치기 어리게 예언하고자 한다.

 

우리는 모두 시작이 미약하지만, 원대한 마무리를 지닌 단풍나무라며 칭찬할 것이다.

 

그리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은행나무라고 위로할 것이다.

 

가을이면 단풍잎과 은행잎을 갈피 삼아 글에 꽂아두는 것처럼, 아이들의 글에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를 심을 것이다.

 

낭만의 계절, 이 가을이 아이들이 글에 영영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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