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4일 서천 봄의 마을 광장 소녀상 앞에서 열린 ‘기림의 날’ 행사장에서 이강선 서천군의원이 동료 군의원인 홍성희 군의원을 겨냥해 “이 사회에서 퇴출해야 한다”라면서 직격했다. 기림의 날 행사를 두고 지역의 한 목회자가 사회관계망에 올린 윤미향 사면복권 관련 비판의 글에 홍성희 군의원이 “기림의 날 행사를 소녀상 앞에서 하는 것 모두 쇼이고 가짜”라는 댓글을 게시했다고 하여 이를 빗대어 “이 기림의 날을 폄훼하고 기림의 날의 의미를 모르는 정말로 무식한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정말로 이 사회에서 퇴출해야 할 인간이 아니겠냐며 막말을 이어 갔다고 한다. 하필 광복절 특사로 윤미향이 사면 복권된 점은 윤미향의 범죄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윤미향 사건은 윤미향 개인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기부금 등을 횡령한 범죄 행위일 뿐, 윤미향으로 하여 일본군의 위안부 피해가 희석될 수도, 기림의 날 행사가 폄훼되어서도 안 된다. 소녀의 상 앞에서 기림의 날 행사를 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이를 두고 “쇼이고 가짜”라고 한 홍성희 군의원의 표현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기림의 날 행사는 일본군의
여름의 끝 무렵을 짐작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새벽녘의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여름을 고요히 배웅하는 것. 숲속 마른 흙냄새나 들판 너머 장작불 타는 냄새를 맡으며 여름의 빈자리를 직감하는 것. 노을이 점점 더 서두르며 검푸른 하늘을 발갛게 적셔갈 때, 문득 여름과의 일별을 예감하는 것. 사그라지는 매미 소리와 퍼져 드는 풀벌레 소리를 따라 한참을 헤매다가, 불현듯 여름의 종결을 깨닫는 것. 저는, 무성하게 맺힌 영롱한 무화과 송이들을 바라보며 남은 여름날을 가늠합니다. 여름의 끝 무렵을 어림하면서, 앞서 시름하기도 하지요. 여름은 심술을 부리듯, 늘 드센 비와 함께 뒷모습을 보입니다. 거센 여름의 끝자락에 선 무화과는 번번이 열과가 됩니다. 지금 저 햇살 아래 보드레한 무화과 한 알이, 폭우 속에서 끝내 열과가 되진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며, 여름의 마지막을 예견합니다. 암녹색으로 짙게 우거진 나무, 틈틈이 붉은 보라로 물들어가는 무화과가 자리합니다. 두꺼운 이파리는 손가락이 유난히 긴 손을 닮았습니다. 짧은 손바닥과 긴 손가락, 그 암녹색 손은 여름 볕 아래서는 제법 든든한 그늘막이 되어줍니다. 늠름한 그늘막 아래에서 무화과는 금세 검붉어집니다. 다만,
“요즘 우리 아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얼마나 귀 기울여 듣고 있을까요?” 학교와 사회 곳곳에서 우리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대화가 이어지지 못한 채 독백으로 흘러가고, 관계는 피로감을 남깁니다. 본디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할 인간관계가, 오히려 갈등과 단절을 불러오는 모순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일상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지 못해 갈등이 깊어지고, 직장이나 모임에서도 상대의 의견을 외면한 채 목소리만 높이는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그렇게 협력은 사라지고 대립만 남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꿀 근본적인 힘은 결국 교육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날 학교는 학생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가치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권리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육은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습니다. 자유와 권리는 책임과 균형을 이룰 때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책임 없는 자유는 결국 이기심으로 흐르며, 교실은 목소리 큰 사람의 권리만 보장받는 불평등한 공간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은 권리와 함께 경청과 겸손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인성교
최근 충남 청양, 논산, 천안에서 연이어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은 충격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청양에서는 한 학생이 2년 가까이 동급생들에게 폭행과 금품 갈취,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논산에서는 학교 기숙사에서 특정 학생을 장기간 괴롭히며 성추행을 일삼는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천안에서도 피해 학생에게 또래 집단이 지속적으로 폭행과 강요를 일삼는 일이 있었습니다. 가해자 중 일부는 수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천안 집단학교폭력 사건의 가해자였으며, 촉법소년 학생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피해 학생과 가족은 삶이 무너졌지만, 충남교육청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원론적인 대책만 반복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촉법소년 제도입니다. 보통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에 해당되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청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소년부로 송치되어 보호관찰이나 상담 명령 같은 가벼운 처분에 그칩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나는 촉법소년이라 괜찮다”, “전과가 남지 않는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오갑니다.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는 동안 가해자는
구암 丘秉大(구병대)선생이 고종28년(1891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전에 잠시 사찰에서 한, 두명과 함께 숙박을 하는데 그 중 한명이 과거에 낙방한자도 함께 하였고 다음날 고향으로 떠나는 객을 처연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시로 남기고 있다. 함께 숙박을 하였으나 통성명을 묻지도 못한 심정이 꿈속에서 만났으나 깨어나 보니 그리움만 남게 되었다고 시로 남겼다. <편집자 주> ◯ 구암 丘秉大(구병대)선생이 고종 28년(1891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는 과정을 시로 남긴 것으로 잠시 거처하는 사찰에서 함께 과거보러왔던 1〜2사람이 함께 숙박을 하였고. 그들 중에는 과거에 낙방한자도 함께 하였다. 과거시험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기 위해 구암 선생은 그곳 사찰에서 머물었고, 다음날 과거에 낙방한 선비는 고향으로 떠나는 길에 올랐다. 의관과 관대를 갖추고 비가 내린 흔적의 길을 따라 낙향 길에 오르는데, 구암 선생은 사찰 문밖에까지 가는 길을 전송하고 있다. 구암 구병대 선생은 낙향하는 선비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때 비가 내렸고 비가 내려 파인 흔적은 낙향 선비의 가슴의 상처를 대변하고 있다. 구암 구병대 선생
언론의 사명은 기본적으로 진실한 정보를 유통시켜 사회의 공정한 여론을 형성하고 사회구성원에 대한 교육적·비판적 역할을 통하여 그 사회가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하여 언론의 보도 내용은 공익적이어야 하고 진실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언론인과 기자는 항상 중립성을 견지해야 하며, 보도 내용에 대하여 팩트 체크 등을 통하여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일부 언론들은 이와 같은 언론의 사명감을 망각한 채, 정치적 이해득실이나 개인적 편견에 입각하여 사실관계가 확인되지도 않은 ‘카더라’ 수준의 기사를 통하여 의도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어 언론의 진실성과 공정성을 훼손하고 있다. 특히 최근 수백만 명의 개인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브’라는 개인 방송이 팩트 체크되지도 않은 소문들을 마치 사실인 양 편향 보도하면서 여론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구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하여 강성발언의 강도를 높여 가면서 우리 사회를 혼탁스럽게 하고 있다. 개인 유튜브 방송은 언론이 아니다. 개인 유튜브 방송은 언론의 사명감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공인된 언론에서조차 마치
여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저마다 마법을 부리고 있습니다. 해마다 뜨거워지는 여름. 더위를 무찌를 완벽한 방도가 없어, 기꺼이 더위와 함께 살아 내려 묘술을 부립니다. 무기를 들고 더위와 맞선다면, 누군가는 먼저 지쳐 쓰러질 것입니다. 누군가는 패배에 승복하고 물러서겠지요. 아니면, 끝끝내 싸움을 이어가다 가을의 만류에 이르러서야 겨우 휴전하게 될지도요. 인생이 이미 전투인데, 여름마저 싸워야 한다면 삶은 얼마나 더 퍽퍽하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우리는 더위와 굳이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함께 여름을 나고야 맙니다. “더워야 여름이지”, “더우니까 여름이지”라고 하면서 더위를 싸움의 대상이나 무기를 휘둘러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마법을 부립니다. 이 더운 여름을 그나마 버틸 만하도록, 이 더운 여름이 그래도 좋아질 만하도록, 후끈함 덕에 시원함의 존재를 알아차리도록, 후끈함을 차라리 화끈함으로 받아들이도록 온갖 비책을 선보입니다. 실은 이 마법이 변변찮고 허술해 보이는 데에 반해, 이상하리만치 효과가 톡톡해 묘술이라 적은 것이기도 합니다. 변변찮고 허술한 이 마법,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법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지난 6월 충남 청양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또다시 같은 지역에서 심각한 학교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2년 전부터 최근까지 장기간에 걸쳐 동급생에 의한 괴롭힘, 금품 갈취, 신체적 폭력이 상습적으로 반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가해 학생이 피해자의 팔에 담뱃불을 지지거나 SNS를 이용한 가혹행위를 강요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을 접한 청양군 지역사회는 큰 충격에 빠진 채, 학부모들은 “이제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 자체가 두렵다”라며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조치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며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불과 2개월 전에 알려진 청양의 학교폭력 사건과 이번 학교폭력 사건을 비교해 봤을 때, 폭력의 양상, 사건의 전개 과정, 초기 발견 과정에서의 미흡한 대처, 유명무실한 학교폭력대응 시스템, 교육청의 무사안일한 대응까지 모든 면에서 두 사건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 또한 2년여간 괴롭힘이 지속되었지만 피해 학생이 등교 거부를 하기까지는 학교는 이 사안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담뱃불 상해와 관련해서도 학폭 전담
해방(解放)은 억압된 속박(束縛)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을 해방이라고 한다. 노예에서 해방, 가난에서 해방을 원한다. 미국의 루즈불트 대통령은 전 세계 인민을 위한 4대 자유 즉 언론과 의사표시의 자유, 독자적인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기독교는 어느 면에서 해방의 종교이다. 1. 나라와 민족의 해방과 자유를 주신 분들을 기억하자.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주의 정부가 일제 36년 동안 억압된 속박에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었지만. 해방과 자유를 위하여 ‘33인의 독립 영웅’ 등을 기억합시다. 6·25전쟁을 통해 마지막 ‘낙동강 전투와 부산의 사수’를 통해 공산화가 되기 직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이 땅에서 젊은 군인들이 생명을 잃고 ‘부산 유엔군의 묘지에 잠든 미군을 비롯해 16개국의 자유우방 국가의 ’군인(軍人) 5만 명 이상의 희생과 그 가족들을 기억(記憶)합시다. 인간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興亡)성쇠를 좌우하시고 전쟁의 승패(勝敗)를 결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주셨으니 감사(感謝)하며 삽시다. 지금도 북한 정권은 호시탐탐(虎視眈眈) 핵무기로 남한(南韓)을 위협하고 있고 중국과 소련
충남 서천군청 신청사 건립 당시 발생한 파일 변이 사건과 관련하여 충청남도개발공사(이하 ‘충개공’)가 (사)대한상사중재원에 공사비 미지급에 대해 중재 신청한 건과 관련하여 지난달 2일 대한상사중재원이 중재 판정하였다. 중재원은 판정주문에서 서천군은 공사대금 18억 5천여만 원과 (공사)위탁 수수료 5억 5천여만 원 및 그간의 이자 등 총 약 27억 원을 충개공 측에 지급하고, 충개공이 신청한 47억여 원중 23억여 원은 기각하고 중재 비용은 각자 부담한다고 선고하였다. 지난 2024년 4월 충개공은 중재원에 총 47억 원의 공사비에 대한 지급을 요청하고 중재 신청 비용을 서천군이 부담하라는 중재 신청을 한 바 있다. 이번 중재원의 결정은 ‘싸우지 말고 반반씩 책임을 지라’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군청 신청사 건립공사 당시 발생한 ‘파일 변이’관련 공사비는 전적으로 설계와 시공을 책임진 충개공에서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도 서천군에서 법원의 소송을 택하지 않고, 충개공이 요구하는 대로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에 합의한 것은 서천군의 명백한 과실이다. 군청 신청사 준공 후 김기웅 군수는 “파일 변이로 발생한 추가공사비에 대해서는 100% 충개공의 과실이고
어린 시절 뽀로수나무라 부르며 먹던 떫은 듯 달콤한 맛, 붉은 열매 오물오물 과즙을 삼키고 나면 부드러운 씨앗 손바닥 위에 보리 모양, 그래서 보리수라고 한다. 어긋난 형태로 자라 잎자루 잎 뒤에는 회색의 비늘조각이 빽빽하게 나 있고 꽃은 황백색으로 잎겨드랑이에서 꽃망울 다발처럼 달린다. 4월에 연한 황색 꽃 피우고 꽃대가 길어 아래로 늘어진 꽃 안에 향기 좋은 꿀이 가득해 벌이 모여든다. 붉은 열매 새의 눈에 잘 띄어 먹잇감이 되어 식물 다양성을 증진해 주는 소중한 생태 자원이다. 보리수나무 원산지가 일본이며 우리나라에 건너와 뜰에 심기 시작해 뜰보리수라고도 부른다. 개량 품종은 열매가 길쭉하고 토종 보리수보다는 3배 정도 크고 뜰보리수보다 2배 정도 크다. 과육의 양이 많은 왕보리수도 있으며 5~6월에 붉게 익는다. 장미목 보리수나무과의 낙엽관목으로 나무의 높이는 3m가량이고 잎은 긴 타원형으로 겹잎이며 열매의 표면이 파리똥 같다고 ‘보리똥나무’라고도 한다. 보리수/ 붉은 보석 올려다본다/ 가느다란 가지 하나/ 엄마 집에서 데려왔다/ 겨우내 하얀 솜옷 입고/ 바람 막는 동안/우윳빛 별꽃 피었다/ 연두가 초록과 놀더니/ 주황이 붉은 사랑/ 엄마의 초어스름
최근 전국에 많은 피해를 입혔던 장맛비가 지나고 본격적인 7월의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7월은 각 학교가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여름방학을 맞은 전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바다와 계곡, 강가와 물놀이 시설 등으로 떠나 가족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 뒤엔 항상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여름방학 중 발생한 물놀이 사고는 연평균 약 40건이 넘으며, 초·중·고등학생이 여름방학 동안 친구나 가족과 함께 물놀이하다가 사망하는 사고는 매년 빠짐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와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의 10년간, 여름철 물놀이 사고로 인한 청소년 사망자는 15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주요 원인으로는 안전장비 미착용, 무리한 수영, 보호자 부재 등이며 대부분 구조가 어려운 계곡이나 깊은 하천에서 일어났습니다. 주목할 것은 물에 대한 과신과 안전수칙 미숙지가 물놀이 사고의 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놀이는 단 한 번의 방심이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고 맙니다. 아래의 실제 사례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2020년
낮이 길고 무더운 계절이자 그림자가 짙고 짓궂도록 변덕스러운 계절, 여름. 여름의 옛말은 ‘녀름’이었습니다. 식물이 가까스로 자라 맺는 결실이자 생명을 먹이고 키워내는 과실, 열매. 열매의 옛말은 ‘여름’이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중세국어를 배우며 그들 사이에 필연을 부여하곤 했습니다. 여름과 열매, 녀름과 여름. 제게는 그 상관관계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여름의 열매, 매실, 토마토, 복숭아, 수박, 포도, 블루베리, 자두, 참외, 복분자, 멜론, 옥수수. 떠올리기만 해도 다채로운 그 맛들은 실로 여름이었습니다. 그 관계에 ‘여름의 여름’이란 이름을 붙이고는 곱씹던 날들이었습니다. 여름의 열매인지, 열매의 여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무턱대고 제멋대로인 계절 속에서 빚어진 과실이라는 것이 그저 좋았습니다. 과실을 열심히도 빚어내느라 무턱대고 제멋대로일 수밖에 없는 계절이라는 것이 마냥 좋았습니다. 무적의 여름들. 여름을 입에 머금고 있으면, 볼 안의 마음은 양달에 놓인 양 익어갑니다. 입 속의 혀는 응달에 놓인 양 식어갑니다. 이토록 뜨겁고도 서늘한 것이 여름입니다. 뜨겁기 때문에 서늘한 것인지, 뜨겁기 위하여 서늘한 것인지. 서늘하기 때문에 뜨거운 것인
김구 선생의 천둥 같은 말씀이 최근 널리 회자되고 있다. 선생은 일제치하의 암울한 상황에서 우리의 독립과 자강을 염원하셨다. 이를 위해 풍족히 살 수 있는 부력(富力)과 남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강력(强力)을 바라셨다. 그러면서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며 문화의 힘을 가장 높이 두셨다. 이는 무력과 외교에 집중하던 당시의 지도자들과 뚜렷이 차별되는 점이다. 민족 지도자로서의 선생의 혜안이 최근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다. 최근 K-팝을 필두로 이른바 <한류>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서구 주류 언론의 시각은 특이한 성공 사례 정도로 여겼다. K-팝이나 영화의 성공은 대중문화의 영역이고 그동안 비유럽권에서도 종종 있어왔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콩쿨대회에서 임윤찬을 비롯한 한국의 연주자들이 잇달아 수상하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까지 이어지자 서구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본격적인 고급문화의 영역까지 한국이 능력을 입증하자 비로소 문화강국으로서의 한국을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구 선생이 문화의 힘을 갈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충남 청양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이번에는 충남 아산시의 한 초등학교 체육부 감독(이하 A씨)이 체육부 소속 학생 15여명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A씨의 폭행으로 일부 학생들은 팔, 다리 등 신체 일부에 피멍이 생기고 심한 경우 정수리가 찢어지는 등의 상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A씨의 폭행에는 야구방망이와 같은 도구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A씨가 다수의 운동부 학부모들에게 현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피해자 상당수가 금전 요구를 거절한 학부모의 자녀들이라는 진술도 나오면서 A씨의 폭행이 금전 요구 거절에 대한 보복성 행위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A씨는 감독 업무에서 배제된 채 경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해당 학교에서 감독을 맡아 온 A씨의 이번 폭행 사건을 보며, 체육계의 자정 노력으로 근절된 줄 알았던 일이 아직도 충남 지역 학교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해당 학생과 학부모님들의 피해 복구와 학교 체육부의 조속한 정상화를 바랍니다. 흔히 '엘리트 체육'으로 불리는 전통적 대한민국 학원 체육은 과도한 경쟁과 결과 중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