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문화예술회관 건립사업과 관련한 군청 행정을 바라보면서 서천군이 롤러코스터 위에 올라타 허우적거리고 있는 형국이라는 느낌이 든다. 서천군은 그동안 문화예술공간으로 사용되어 온 문예의 전당이 1988년 준공 후 36년간 사용해 오면서 건물 노후화와 기능상 한계로 군민의 문화예술 진흥과 문화 향유 기회 확대라는 목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문화예술회관 신축사업을 추진해왔다. 문예의 전당은 애초 군민회관으로 건립된 대강당 수요 목적에 부합하는 건축물로서 이름만 문예의 전당으로 개명했지, 문화예술회관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 군민회관과 문화예술회관은 그 사용 목적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현 문예의 전당이 무대의 규모가 좁고, 음향 및 조명 등 각종 문화예술 시설로 기능을 갖추지 못하여 군민들에게 질 높은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군은 2020년 충남 균형 발전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신청하여 도비 101억 원을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문화예술회관 건립사업을 추진해왔다. 물론 사업 추진과정에서 다양한 군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백년대계의 미래지향적인 서천 발전을 도모하다 보니, 신축 건
9월 중순을 지나는데도, 더위는 서늘함에 자리를 내어주지를 않았다. 예년에는 이 정도 욕심을 부리고는 미련도 없이 물러서는 법이었는데, 올해에는 무엇이 아쉬운지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예년에는 분명 가을이라 부르던 시기였는데, 올해에는 9월 중순을 여름이라고 해야 할지 가을이라고 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여름인가, 가을인가 긴가민가했던 생각을 다잡는 데에, 정확히는 여실히 뜨거움에도 가을이라고 해야 한다고 단정하는 데에 이번 보름이 큰 몫을 했다. 누군가는 가을의 정취를 새벽이슬에서 찾고, 누군가는 가을의 정취를 대낮에 물든 산에서 찾고, 누군가는 가을의 정취를 바다의 짠내나 석양에서 찾는다. 그리고 나는, 가을의 하늘에서 찾는다. 가을의 정체성은 하늘과 맞닿아있지 않은가. ‘하늘만 보면 가을인데…’라는 표현에 거리낌이 없을 만큼, 하늘로써 가을을 가늠하곤 한다. 밤낮없이 말갛고 높푸른 가을의 하늘. 한가위를 보낸 무렵에도 여전히 더웠다고는 해도, 밤공기와 바람은 꽤나 선선하여 가을의 초입인 듯했다. 눅진한 공기로 인해 장마철의 한때가 되살아나기도 했지만, 선선한 바람은 분명 가을로 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을과 통하는 그윽한 밤이었다. 깊은 밤하늘은
영국의 최고 의원으로 꼽히는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분이 1787년 영국 하원에 당선됐다.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복음주의자이기도 한 윌버포스는 하원의원에 출마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영국의 노예해방에 대한 사면 받았다’라고 유세했다. 그리고 당선된 뒤 영국 내 노예해방만을 위해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영국의 노예 무역산업은 국가 수입원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영국 식민지 산업의 기둥이자 근간이었다.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노예해방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노예제도 폐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왕족과 귀족, 재벌 등 기득권층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압박당하고 모욕당하고, 중상모략에 시달렸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강제로 붙잡아온 사람들을 살기 띤 폭행과 탄압 등 인권을 짓밟힌 이른바 노예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노예를 둘러싼 왕족·귀족들의 뒷거래와 뇌물, 성적 유린이 횡행한 것을 윌버포스는 넘어가지 않았다. 윌버포스는 하나님의 뜻이 노예해방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었다. 왕족, 귀족, 재벌 등이 총합세해 공격해도 영국의 노예는 해방되어야 한다며 뜻이 있는 곳에
보랏빛 바닥 딛고선 저 애틋한 실루엣 어느 줄기 따라와 저리 고운가? 파도에 꽃등 켜니 이곳은 향기 자라는 바다 맥문동 내공에 한 줄 서는 소나무 토실토실한 입속에 풀잠자리 제 살점 하나 낳는다 빈 둥지에 똬아리 트는 꽃향기, 솔 향기 그 속엔 새의 날개와 바람의 날개가 산다 그리고 깃털처럼 보드라운 여인의 속삭임이 산다 7월의 불볕더위를 먹고 자란 맥문동 그래서일까 18만 제곱미터의 장관을 이루는 장항 송림의 산림욕장의 맥문동꽃 축제는 그야말로 보랏빛 융단을 깔아 놓은 그것처럼 빛과 향기의 향연은 감탄사를 자아낸다. 한방에서는 폐를 보호하고 뇌세포 보호, 심장 기능 강화 등 약효가 있다니 필자는 아롱아롱 꽃망울 터트린 맥문동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옛날에 진나라 진시황에게 새가 난초잎 같은 잎을 물고 진시황에게 날아들었다. 진시황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방 술에 능한 귀속자에게 물었다. 귀족자는 불사초인데 그 풀잎으로 죽은 사람을 덮으면 사흘 안에 살아난다는 그 말을 들은 진시황은 방사서복의 무리를 보내 찾게 하였으나 결국 불사초를 찾으러 간 방사서복의 무리도 불로초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 후로 맥문동을 본초강목에서는 불사초로 기록하였다. 이야기를 뒤로
최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여군지부가 공식 입장문을 통하여 ‘지방의원 재량사업비 폐지’를 주장하고 나서 화제이다. 전공노 부여군지부의 주장 등에 따르면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는 지방재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전국적으로 많은 문제를 초래해왔다”라며 “2018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여러 지방의회에서 의원들이 재량사업비를 통해 비리를 저지르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사례가 다수 적발되었다”라고 언급했다. 이미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는 2012년 감사원과 행정안전부가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방의회에서 여전히 이를 유지하거나 편법을 동원하여 사실상 재량사업비를 운영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소규모 주민숙업사업비 명목으로 예산을 편성하여 각 의원에게 배정하고, 이렇게 배정받은 재량사업비는 주민숙원과는 무관하게 지방의원 자신의 지역구 관리용으로 사용해왔다. 사업이나 목적, 성격은 물론 사업자 업체 선정까지 수의계약의 형식으로 의원 자신이 결정하다 보니 특혜시비는 물론 의원들의 급여 이외의 부수입으로 짭짤한 수입을 얻어 지방자치단체의 혈세를 축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지방의회는 여전히 예산심의 권한 속에 공공연히
어제의 델몬트 유리병에는 홍덕리 할머니가 우려낸 보리차가 담겨 있었다. 오늘의 델몬트 유리병에는 분위기 좋은 동네 카페의 생수가 담겨 있다. 오렌지 주스를 사면 그에 딸려 오던 델몬트 유리병이었지만, 지금은 제 가치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어제의 것은 촌스럽고, 내일의 것은 세련되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가 찾아낸 것은 ‘뉴트로’이다. 복고풍을 새롭게 만들어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델몬트 유리병의 가치는, 유리병이라는 물질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향수, 즉 레트로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어떤 것에는 희한한 힘이 있다.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당연한 이치에 ‘영원성’이라는 효용을 부여하고, 그로부터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종종 더 나아가서는, 그로부터 어떠한 ‘고유성’을 발견하기까지 한다. ‘캐딜락 엘도라도’나 ‘폭스바겐 카르만 기아’에서, 수동 타자기나 축음기에서 향수를 느낀다. 그 향수는 ‘레트로’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이상한 것은, 유행을 만드는 이들과 유행을 타는 이들은 민트색 ‘포드 썬더버드’의 시대에 살지도 못했고, 감히 그 시대를 구경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는 데에 비해
충남 서천군의회 한경석 의원이 지난 8일 모 지역신문에 ‘변화 없는 원구성, 서천군의회를 생각한다’제하로 특별 기고한 기고문이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한경석 군의원은 특별기고문에서 “이번 후반기 원구성 과정에서 노출된 ‘담합은 의회의 투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주민들의 신뢰를 떨어트릴 것이다”, “나눠먹기식 담합, 담합에 의한 자리 지키기”라고 주장하며 ‘담합’이라는 단어를 6차례나 사용하면서 담합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지역신문은 지난 13일 자 “군의회, 한경석 의원 담합 주장에 징계 절차 착수 전망”제하의 기사에서 ‘군의회는 지난 13일 오후 3시부터 특별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의원간담회에서 한경석 의원의 기고문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이강선 의원은 “한경석 의원의 주장은 윤리특별위원회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며 징계 절차를 추진할 입장을 밝혔다. 군의회 제9대 후반기 원구성과 관련한 잡음은 김경제 의장이 소속된 정당인 국민의힘 당원 800여 명의 연서로 국민의힘 충남도당에 제출된 ‘김경제 출당 요청’ 소문과도 연관이 있다. 이 소문에 의하면, 김경제 전반기 의장이, 후반기 의장까지 독차지하기 위하여 야당인 더불
‘맨살 드러낸 하늘 아래 / 닭 볏 꼿꼿이 세운 맨드라미 / 해종일 오가는 사람들 얼굴 쫒아 댄다 매끈한 강물 끓어올라 / 녹조 낀 물 벽에 타들어가는 어족의 신음 소리 / 한 번도 일어설 줄 모르던 山 / 벼랑 끝에 휘몰아쳐 부서지는 신록의 몸통 팔팔한 날 / 죽은 나무 상여 메고 / 골고다의 산 오르는 / 무심코 지나온 천형 죄 우리의 발자국!’ 필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기후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최근 충청도와 전라도에 물 폭탄이 내려 군민들이 시름에 빠진 일이 있다. 토사에 묻힌 집들과 침수된 가옥들 곳곳이 물난리로 길이 끊이고 신음하는 가축들을 보면서 아비규환 같은 7월을 보냈다.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기후 변화 위기에 이번 일은 아주 미비한 일일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1도만 올라가도 인류는 생존에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단순히 1도가 올라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모든 생태변화가 바뀌는 게 문제이다. 예를 들어 천연기념물 한 종이 사라지면 먹이 사슬 관계가 파멸되고 상태 시스템 붕괴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인류에게 영양을 주게 된다. 기후변화가 주고 있는 메시지는 참으로 참담하며 상상할 수 없는 큰 재앙을
지난 주말 가구를 옮기다가 큰 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방 하나를 창고로 만들기 위해 이방 저방에 있는 책장을 옮겼습니다. 작업 도중, 상단 절반에 책이 꽉 찬 어느 책장의 위치를 변경하기 위해 밀었습니다. 다른 식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책장을 낑낑대고 밀다가 갑자기 책장의 무게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상단에만 책이 들어 있고 아래는 비어 있어 무게중심이 내부에서 외부로 이동하면서 저를 덮친 것입니다. 그 바람에 제 온몸에는 멍이 들었습니다. 팔뚝은 책장에 쓸려 껍질이 벗겨졌고 엉덩이 부분은 큰 멍이 나 있었습니다. 오른쪽 발등도 찧었는지 아픕니다. 이 일을 겪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이제 무엇을 혼자 힘써서 할 나이는 아닌가 보다 하는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크게 느낀 것은 <무게중심>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고가 난 원인은 책장의 무게중심이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힘을 가하자 무게중심이 책장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면서 넘어져 저를 덮친 것입니다. 저는 <무게중심>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도 무게중심이 있습니다. 삶의 무게중심이 안에 있는 사람은 안정적이고 편안한 반
혜지와 만나기로 했다. 혜지는 키가 작은 나와 달리 키가 크다. 아니, 외형을 생각하면 크다는 말보다는 길쭉하다는 말에 더 가깝고, 내면을 생각하면 크다는 말보다는 넓다는 말에 더 가깝다. 더 잘 어울리는 친구이다. 웃음이 화사하고, 소리는 청아하고. 18년을 함께 하면서, 특히나 어른의 문턱을 넘고는 매번 만날 때마다 배울 점을 탐사하게 하는 친구이다. 추억이 유리 구슬이라도 되는 양 매만지고 닦아내기를 반복했다. 강아지가 무서워 친구의 집 소파 위에 둘이 같이 서 있었던 일, 꼭 읽어야 하는 책 소개하기 조별 과제를 위해 주말에 친구들과 모였던 일, 어리숙해서 후회되었던 일, 그럼에도 강단 있게 결정했던 일. 유리 구슬에는 어떠한 힘이 있어서 무더운 날씨조차도 만족스럽기만 했다. 오히려 담쟁이가 틈을 빼곡히 메워가는 초록의 여름을 빛내는 듯했고, 도리어 지상의 열기를 붉은 빛으로 뽐내고야 마는 능소화가 더욱 고개를 빳빳하게 들도록 하는 듯했다. 초록의 담쟁이와 주황의 능소화를 보라고 뜨겁나보다, 여길 정도였다. 추억을 야금야금 먹는 우리와 같이 햇살을 야금야금 먹는 하늘이었다. 두 볼은 채 삼키지 못한 햇살로 가득했다. 말갛던 볼은 분홍으로 물들었다. 저
최근 서천군청 공직자로 추정되는 제보자가 충남도청 홈페이지에 익명 제보한 내용과 관련하여 언론이 여과 없이 제보내용을 보도하면서 서천군수 부인이 군청 여성 공직자로부터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의혹이 서천지역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보령·서천 지역위원회가 지난 9일 충남도청 기자회견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또다시 의혹을 부풀려 제기하고 있다. 소위 서천군수 부인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은 제보자의 A4용지 4~5장 분량의 익명 제보가 전부이다. 아직 실체나 정황 근거가 드러난 것이 없다. 만일 익명 제보자의 제보내용대로 군수 부인이 명품 가방을 선물 받았다면 서천군수는 즉시 사퇴하고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제보내용이 허위이고 보도 내용이 가짜뉴스로 밝혀지면 피해자인 군수부인과 명품 가방을 선물했다고 알려진 서천군청 여성 공무원이 본 그간의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현재 명품 가방을 선물 받았다고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서천군수 부인과 선물했다고 언론에 보도된 서천군청 여성 공직자는 모두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여성 2명 모두 정신적인 충격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품 가방을
‘갈대가 / 비에 젖을 때 / 금강이 울고 있다는 것을 / 그때는 몰랐네. 갈대가 / 시린 발을 담그고 / 은실 머리를 흔들 때 / 별빛이 울고 있다는 것을 / 그때는 몰랐네 / 비로서 알 수 있으려나. 갈꽃의 사랑은 서로를 기대어 / 무수히, 무수히 흔들리며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며칠 전 필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신성리 갈대밭을 다녀왔다. 모내기가 한창인 서천의 들녘은 비단 포를 깔아 놓은 듯 파릇한 새싹 모가 초록 바다를 이뤄 넘실거렸다. 옛날 어머니들이 아주까리기름을 머리에 발라 가르마 타서 곱게 빗질한 그것처럼 서천 들녘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처음이란 단어는 언제나 설렘을 동반하듯 우리는 설렘 가득 싣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농경 문화체험관과 특산품 판매장이 있었다. 매장은 서천 특산품과 갈대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쉼터인 카페가 있다는데 그날은 문이 닫혀 있었다. 한 바퀴 들러 보고 2층 전망대에 올라서자 잠잠히 여물고 있는 서천의 젖줄인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갈대밭을 바라보며 금강이 서천 사람들에게 미쳤을 역사와 시대적 영향력에 대해 생각했다. 금강을 서천 사람들은 진강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있
검사는 무채색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장관께서 취임하고 검사들에게 끈이 있는 검정 구두만 신으라는 지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검사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에 검정과 흰색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범죄자와 피해자로 세상을 구분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빨간, 파란, 노란 등 아름다운 색깔이 많습니다. 한 사람을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구분 지을 수 없습니다. 그의 어느 부분은 검은색이지만 다른 부분은 빨간색도 노란색도 있을 것입니다. 검사들은, 아니 저는 오랫동안 그것을 몰랐습니다. 검사들은 보수적일까요? 진보적일까요? 검사는 검찰 조직을 운영할 때는 지극히 보수적인 집단입니다. 혁신이나 미래에 대해 어색해합니다. 그러나 수사할 때는 보수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수는 국가와 사회의 잘못을 보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개선하려는 집단이다. 진보는 국가와 사회의 잘못을 보면 ‘축적된 이론’을 바탕으로 급진적으로 혁신하려는 집단입니다. 검사들은 타인의 잘못을 집요하게 찾아내 그 잘못을 단죄하는 집단이다. 단죄보다 급진적인 혁신은 없습니다. 처벌을 통해 사람이나 조직은 새롭게 거듭나게 된다. 검사들은 백지
최근 서천군청의 소위 판도라 상자 사건과 관련하여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기자윤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공익을 위한 언론의 역할은 매우 크다. 언론은 사회정보를 제공하고 사회적 불의를 밝혀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사회구성원들이 의사결정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등 공익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책임이 있는 언론의 중심에는 기자들의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윤리적 원칙이 앞서야 한다. 기자들은 사회의 감시자로서 대중에게 정확하고 공정하게 정보를 알리는 중요한 의무를 진다. 정확성,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 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윤리 규범이 언론의 바탕이 되어야 하며, 언론은 이와 같은 윤리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신뢰성을 유지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을 통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사회적 책임과 윤리 규범을 망각하고, 편향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남발하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공정한 보도 원칙을 무시하고 정치적 편향성에 사로잡힌 언론의 모습을 비췬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도 않은 가짜뉴스를 여과
5월 말, 교장 선생님과의 차담회가 있었다. 그 시간, 교장 선생님의 ‘마음의 근육’과 관련된 문장들이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누구나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고민은 갯벌과도 비슷해서, 방심하면 어느새 무릎까지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전시된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마음과 정신은 개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련해서 얻어진다면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마음의 근육’이었다. 보름 넘게 괴로움을 삼키고 있었다. 분노와 우울을 넘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괴로움은 결국 나를 향한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그 시기에 맞물리게 차담회를 갖게 되었고, 그때 들은 ‘마음의 근육’이라는 말이 판도를 뒤집었다. 근육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둥실 떠올랐다. 더 이상 괴롭고 싶지 않은, 정확히는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무엇이든 하게끔 만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정을 끊어내는 것이나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유감스럽게도 그 힘을 걱정 따위에 쏟아서 괴로웠지만, 거두절미하고 긍정적인 것에도 충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