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어라!’ 하신 분들이 계실 테죠.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편한 마음으로 이번 달 글을 눈에 담아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마, 그렇게 해주신다면 가을이 어깨를 두드리고는 옆자리를 탐낼 것입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바람이 서늘하다 못해 차가워지는 가을의 둔덕이 참 버겁습니다.
분명,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서 이 가을은, 따사로운 햇볕 아래 무르익어가는 짙은 초록과 맑은 노랑, 드리우는 파랑과 빨강으로 마음을 가뿐하게 만들지요.
여름에서의 가을로의 순환은 서서히 마음도 고점으로 향하게 합니다. 개운하고 쾌청한 날들과 풍경, 무언가 떨쳐낸 듯한 웃음들이 선한 초가을의 묘미.
하지만 둔덕의 고점은 결국 저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죠. 차츰차츰 올라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주저없이 곤두박질치게 하는 경사라고 할까요.
차가워지는 가을은, 내 가을이 아닌 네 가을인 것만 같습니다. 색이 모두 거두어진 자리에는 잔가지들의 휘청임과 메마름만이 남지요.
햇살마저 앗아간 자리에는 살갗도 닿고 싶지 않다는 듯이 몇 겹의 옷을 껴입는 이들과 두꺼워진 옷가지만큼 벌어진 관계의 틈만이 남지요.
무르익은 곡식과 과일이 사라진 자리에는 살고자 버둥거리는 자그마한 생명만이 남지요. 어스름은 더 빨리 찾아오고야 맙니다.
그래서 이 가을의 둔덕이 참으로 버겁습니다.
하지만 버겁더라도 기꺼이 버텨내야 하는 것이 삶이라 속삭이는 헤르만 헤세의 문장이 퍽 가을과 어울리는 탓에, 어느 멋진 날들을 발굴하고 심탐해 보리라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가을의 둔덕에서 가뿐히 낙하하고자, 가을의 어느 멋진 부분들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보이려 합니다.
그 주춧돌이 바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빠의 노랫소리로 가을을 알아차리곤 했습니다.
때마침 아빠의 음력 생신이 대개 시월이기에, 생신 이벤트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주하곤 했지요.
15년 정도가 흐른 지금, 가정을 꾸리고 나니 이 기억이야말로 가을의 멋진 부분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행복’이나 ‘흡족’은 ‘추억’으로 남고, 인간은 ‘추억하며’, ‘추억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이 가을에는 이 추억을 갉아먹으며 살아가야겠지요.
주춧돌에 올라갈 첫 번째 기둥은, 신청사 후문의 문화공원에서 이루어진 ‘모두가족축제’ 날입니다.
다정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 또한 다정함의 대상이 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 나는야 스피커’에서의 감회는 경탄에 가까웠기에, 곱씹을 멋진 날로 여겨집니다.
우리의 ‘국어’를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면, ▲언어로서의 한국어 ▲모국어로서의 한국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로 볼 수 있지요.
세 가지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들은 아주 다릅니다. 그렇기에 언어학자가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기 어렵고,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외국인에게 국어를 가르치기 어려운 법이지요.
모국어와 외국어로의 간극이 분명히 존재하지요.
하지만 결혼이주여성·외국인 주민들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말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국어로서의 한국어로 들려왔습니다.
다른 언어를 배우고 알아가는 것은 다른 세계로의 항해임이 분명하지요.
격랑에 난파되지 않고, 무대에 선 이들과 어긋남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직관(그들과 우리가 아닌, 우리 속의 그들, 그저 우리)은 전율적이었습니다.
두 번째 기둥은, 서천중학교 1학년 아이들과 함께한 ‘청소년 안전캠프 SSG’ 날입니다. 공들인 생명의 성장에서 오는 뿌듯함을 아실 테죠.
함께하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며, 용서하고 감싸는 것. 이 아이들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 과실이구나, 무르익기만 할 과실이구나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만큼 시린 가을이더라도, 제 옷만 껴입지 않고 오히려 서로 부둥켜안으며 자라도록 힘써야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욕심인 걸 알지만, 부둥켜안을 때 나도 같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바람까지 덧붙였지요.)
아직 두 가지의 기둥밖에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적어도 세 기둥은 되어야지 어떠한 형태의 구조물이든 안전하다고 하던데, 남은 시월은 기둥을 찾기 위하여 부단히 애써야겠습니다.
가을의 둔덕에서 가뿐히 낙하할 수 있을까요? 혹여, 가을의 어느 멋진 부분들을 알고 계신다면 알려주시길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추신-‘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번안곡입니다. 원곡은 Elisabeth Andreassen의 Dance Mot Var이며, 놀랍게도 가을이 아닌, 봄노래입니다. 그래서인지, 원곡은 ‘무르익음’보다는 ‘싹눈’과 ‘꽃잎’에 어울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