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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지 위에 빛의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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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나는 마음 빼앗기는 빛 그림이고 싶어 긍정을 보았다.

 

수원에서 입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때였다.

 

취미반 수강생 고향이 서천이란다. 서천에 관심을 보이는 나에게 무창포 해수욕장이 모세의 기적이라며 시간을 내서 가자고 했다.

 

그때의 여행이 나의 변주곡이 되었다.

 

중·고교생 입시 미술은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돈의 노예가 되었고 대학 진학률에 집착과 좌절이 나의 자존감을 흔들었다.

 

욕심이 무지에서 온 것을 깨닫고 억지스러운 삶을 내려놓았다. 50여 년을 품어준 수원을 뒤로한 뜻은 대지의 푸른 꿈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흩어진 마음을 다듬고 귀촌했다.

 

봄에는 자작나무가 ‘세잔의 마로니에 가로수’ 같고, 여름엔 대밭 짖은 숲이 ‘모네 수련의 연못’ 조화를 이룬다.

 

산모퉁이 지나면 ‘세잔의 균열된 집’이 보이고 가을엔 ‘아를의 햇살’처럼 감나무가 찢어져라, 보답이라도 하듯이 볼 붉혀 웃는다.

 

겨울은 ‘시슬레 눈쌓인 부르시엔느의 뜰’처럼 춥지 않아서 양지 따라 냉이 시금치 곰보배추가 파릇파릇, 들판에 ‘고흐 씨뿌리는 사람’이 연상되고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루소의 꿈’처럼 내 꿈도 푸르다.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산다는 ‘어메니티 서천’ 메시지가 있다. 산은 나지막하고 들과 바다가 풍요롭다 장항 바닷가에서 먹는 ‘대구볼찜’에 내 볼도 터진다.

 

수원에서 친구들이 홍원항에 놀러 와 ‘르누아르의 뱃놀이에서의 오찬’처럼 해넘이 보며 꼴뚜기 조개구이 쩍쩍 입 벌려 먹고, 해돋이에 낚싯줄 당기며 서천 자랑에 배부른 아침이다.

 

길을 걷다 보면 주택가 좋은 자리에 산소가 많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떠오른다. 선산 가족묘에 모셨는데 안내판도 없는 깊은 산속, 큰맘 먹고 아버지 생신날 찾아갔는데 쓸쓸한 바람만 쌩했다.

 

서천은 지척에 조상의 묘가 있어 자손들이 자주 돌보니 복이다.

 

우리나라는 전통 매장 관습으로 매년 20만 기의 묘지가 생긴다고 한다. 그중 방치된 묘가 50%라 한다.

 

농민들이 경작하기에 좋은 농토가 묘지로 사용되고 국민의 1인당 주거 공간이 4, 3평인데 묘지는 15평 4배나 넓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 서천의 경관을 담는다. 산소를 빼고 화폭(畫幅)을 잡아본다. 아뿔싸 높낮이가 어색하여 구도(構圖)가 맘에 안 든다.

 

충남이 양반의 도시인만큼 묘를 그대로 인상파의 거장 클로드 모네처럼 훈풍에 휘날리는 빛과 그림자의 속성으로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그림이고 싶다.

 

서천문화원에서 초대전으로 작품전을 했는데 서울 사시는 황인정 어르신께서 그림 속 풍경이 모두 자기 땅이라며 그림을 사 가셨다.

 

추석에 아들 며느리가 인사 왔다며 하는 말 “그림 앞에서 제사를 지내니 산소에 오지 않아도 돼요”라고 한다. “가양리 그림이 우리 가문의 역사이고 재산 1호”라고,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함박웃음이다.

 

빛의 화가들 ‘샤갈의 파리에서 뉴욕까지’의 동화 속 작품들에서 설렘은 동백정에서 본 동백꽃의 빨간색과 초록의 대비 설렘을 잃을 수 없다.

 

높은 하늘과 멀리 보이는 월명산이 감싸고 중턱에 7층의 토지가 울창하고, 밤나무밭에 화가 ‘시슬레의 아르 장 테이유 근방의 보리밭’ 그림처럼 평지와 언덕이 6:4 비율로 긍정이 옹기 종기다. ‘고갱의 돼지와 말이 있는 풍경’ 전형적인 농촌 그림이다.

 

귀촌 20년 자연과 소통하며, 고독으로 탄생한 긍정의 힘이다.

 

우리 부부만의 열정으로 대지 위에 전시장을 짓고, 토지 위에 손자 손녀도 놀러 와 텃밭의 따스함에 안심의 정서가 푸르른 성장을 꿈꾸고, 그림들과 ‘모네의 파라솔을 받쳐 든 여인’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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