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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사랑에 잠기려 낮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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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흐른 이야기를 듣고 동그랗다보다 둥그스름하다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47개의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그중 2개가 동그라미에 가깝다는 내용과 함께 “회사 생활이란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의 일상도.”라는 결론을 냅니다.

 

바야흐로 벚꽃이 풍성히 맺힌 4월, 둥그스름한 나날들을 보내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말간 꽃잎이 흩날리고 그 자리를 꿰차는 푸른 이파리의 향연.

 

꽃송이가 맺히고 터지고 떨어지는 보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은 찰나임에도 큰 울림으로 남습니다.

 

하루 사이에 야윈 가지에는 새살이 돋아나고, 하루 사이에 새살은 뽀얗게 물들고, 하루 사이에 초록이 무성히 자리하는 이 봄날. 생명의 신이는 소리도 없이 눈망울을 가득 채웁니다.

 

따스한 볕에 묻히는 조곤조곤한 말소리들과 유달리 찬란한 달의 모양새까지 아름다움을 찾아내지 않기란 더 어려운 봄날입니다.

 

가득 찬 개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고, 흩날리는 낙화의 공간을 함께 채우고 싶은, 작은 자갈에까지 아로새겨지는 빛을 함께 쬐고 싶고, 봄 향이 스며든 밤에 우리들의 이야기를 수놓고 싶은 이 봄날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곳곳에 묻어난 생명력은 삶에 활력을 주고, 이 활력이 사랑의 동력이 되는 듯합니다.

 

어느 마음이라도 소중해지는 봄날, 이정하 시인의 ‘낮은 곳으로’라는 시를 떠올립니다.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낮은 곳이라면 지상의/그 어디라도 좋다./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한 방울도 헛되이/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그래, 내가/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나의 존재마저 너에게/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잠겨 죽어도 좋으니/너는/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가장 아래로, 깊이 아래로 가 너를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사랑. 이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가늠하게 됩니다.

 

결국 사랑의 원천은 잠겨 죽어도 좋다는 마음, 너의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는 의지, 감당하고 싶다는 소망이겠지요.

 

또한, 이러한 동력은 재는 것 없이 사랑을 사랑 그 자체로 음미하는 자세가 기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주 감사하게도, 이러한 사랑을 학교에서 무수히, 부지기수로 느껴가고 알아가고 또 배워가고 스며 들어가고 있습니다.

 

미묘한 심경의 변화를 잡아내고 기분이 좋지 않냐 묻는 세심한 사랑, 누구보다 먼저 맞이하겠다며 가장 먼저 학교에 와있는 부지런한 사랑, 꽃을 함께 보고 꽃과 함께 사진을 찍어 담는 낭만적인 사랑, 멀리에서부터 달려 나와 손뼉을 마주하는 반가운 사랑, 창문 너머로 손하트를 해 보이는 귀여운 사랑, 틈날 때면 찾아오는 성실한 사랑, 아름다운 풍경을 나누어주는 순수한 사랑, 색다른 이벤트를 해준다며 골몰하는 애정 어린 사랑, 그저 넘치고 넘치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들!

 

제아무리 버거운 순간들이 많은 하루임에도, 이런 사랑을 되새기면 삐뚤빼뚤한 하루가 금세 둥그스름해집니다.

 

그래서 더욱 사랑하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관심이 의무이며 책임인 나에게,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에 대한 대답은 더한 사랑밖에 없지 않을까요.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아주 작은 모습만으로도 크고 깊은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떤 노래 가사에서는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는 노력을 논할 수 없겠지만 사랑이 있는 상태라면) 노력은 필수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지 마음 먹고, 기댈 구석이 되어줄 것이라 마음 먹고, 잊고 살다 갑작스레 떠오르고 그 기억으로 미소 짓게 되는 추억을 만들어주겠다 마음 먹습니다.

 

이정하 시인의 ‘낮은 곳으로’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봄날을 만끽할 수 있게 하는, 사랑을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이 모든 것을 알아가게 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사랑에 잠깁니다.

 

무탈히 사랑에 잠기는, 무사히 둥그스름한 하루를 쌓아가는 봄이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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