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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설 명절, 고향민심이 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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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권의 한 충청권 국회의원을 만났다. 설 연휴를 열흘 쯤 앞두고, 그는 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흉흉한 민심 때문이다. 정치인을 보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도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아예 국회를 해산하라는 불신과 분노의 함성들로 고개를 들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에 배지도 떼고 다닌다. 한때 현 정권의 실세로 꼽혔지만 지금은 뒤편에 비켜있다. 목소리에 힘도 없고 TV에 나오는 것도 부담스럽다. 때론 숨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여러 달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터져 여당의원으로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펴도, TV를 켜도 촛불민의가 뉴스에 중심이니 그는 할 말을 잃고 있다. 박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비선실세 최 씨 등에 대한 특검으로  국민이 실망과 불신만 안게 된 터다. 한때 현 정권과 막역한 사이였던 그는 요즘 처신을 어찌할지 괴롭다고 했다.   

무엇보다 정치인을 벌레 보듯 하는 뭇 시선이 괴롭다고 한다. 국민의 혈세를 축내며 특혜를 누리는 집단으로 정치인이 꼽혀왔다. 그런 판에 처신하기 여간 곤란하지 않다는 게 그 의원의 얘기다. 정치인에게 보내는 격려와 응원이 흔치않은 현실이다.

그는 설 연휴 때 지역구를 돌며 구민들을 만날 계획을 세웠었다. 설 명절 인사를 나누며 민심을 듣고 정치에 반영하겠다는 명분에서였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하다. 마치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여론의 바다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이번 계획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지역구를 돌며 쓴 소리에 항의를 들어야 했고, 때론 험한 욕 세례도 감수해야 했다. 더구나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 간의 게이트에 성난 민심까지, 불안했던 설 민심을 확인했다고 한다.

박대통령의 탄핵심판 속에 연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전이 이미 불이 붙었다. 문재인, 안희정, 안철수. 남경필, 유승민, 이재명, 황교안, 정운찬, 이인제, 김부겸, 손학규, 정의화 등 자천타천 대선주자들이다. 이 거물들의 행보가 부산해졌다. 

박대통령의 탄핵심판이 2월말이나 3월초에 내려진다. 탄핵이 기각되면 박대통령이 복귀하지만 그 반대이면 곧 대선정국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대선주자중에는 어느새 민생보다 정치결사체를 결성하고, 조직을 다듬고, 전략을 세우며 벌써 표밭으로 달리는 정치권은 분주해졌다.

새해 들어서 한반도 정세도 심각하다. 북한 김정은의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위협 으로 남북 관계가 냉각된 가운데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도 심상찮다. 모두 위기라고 한다.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역시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 사드문제로 한중관계는 정치, 경제, 문화 분야가 깊은 수렁에 빠졌고, 한일관계역시 극도로 혼란스럽다.

외환 위기보다 하루하루 더 고단한 지금, 우리는 설 명절을 맞이했다. 팍팍한 삶에 긴 한 숨만 짓는 데도 분노와 좌절, 허탈과 배신, 실망이 우리 설 명절 밥상머리에 올랐다. 박대통령을 시작해서 최순실이니, 정유라니, 조윤선이니 김기춘이니, 문재인이니, 반기문이니, 정운찬이니 안희정이니 심지어 트럼프까지 모두 설 민심의 안주거리였다.

설 명절, 고향 민심은 천심이다.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설 민심의 90%가 적중했다는 여론분석을 보면 명절민심은 하늘의 뜻인 것이다. 정치인을 불신하는 민심이면 사실이고, 먹고살기 힘들다면 고단한 것이다.

박대통령의 탄핵심판은 예측불허다. 그렇기에 지난 설 민심은 중요하다. 모이고 만났던 지난 설 명절 민심이 곧 해답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도 마찬가지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벌어진 이번 사태로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국론이 갈려 셈법도 여러 가지다. 그래서 성난 고향의 여론은 하늘의 뜻이다.

이번 설 민심은 그간의 명절 민심과 달라보였다. 집권자에게 국민을 헤아려 달라는 바람이나, 정치권은 싸우지만 말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불만의 민심과는 다른 것 같다. 일자리도 없고, 문 닫기 직전이니 제발 먹고 살게 해달라는 절규가 그것이다. 실망과 분노, 고단한 삶에 대한 절절한 민심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고향에서 맞이하는 설 명절. 가족 친지의 만남을 통해 사랑으로 보듬고 희망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어야한다, 응원과격려가 있는 그런 명절이 되었어야한다. 미래를 얘기하고 꿈을 북돋는 고향의 넉넉함과 풋풋함이 있어야할 그 명절임에도 지난 설 명절의 민심은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때문에 국가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설 민심에 겸손해야 한다. 지금처럼 제 목소리만 옳다고 우기는 정쟁은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정치권이든 정부든 무기력 무능력을 거둬들여야 한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심판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지난 고향에서의 설 민심을 다시금 가슴속에 새기고 엄중히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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