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다’라고 한다. 악한 세상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1. 가난한 자를 학대한다. 현대문명이 만개(滿開)한 오늘날에도 지구상에서 당하는 소외 계층들이 많다. 이것은 학력이나 교양의 정도와는 무관한 것이다. 세상에 악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사람들은 악의 지배를 근본적으로 받고 있다. 합당치 못한 일을 서슴없이 범하고 있다. 약자를 짓밟고 폭언하고 함부로 대한다. 2. 이웃의 형통(亨通)을 시기한다.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고 동서가 임신하면 밤잠이 안 온다는 속담이 있듯이 악 한자들은 이웃의 형통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축복(祝福)해주시는 대신 질투(嫉妬)하고 미워한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진리를 좇아 행해야 한다. 3. 탐욕(貪慾)을 절제(節制)하는 처세(處世)가 필요하다. 절제란 우리로 하여금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은사이다. 이를 경시(輕視)하는 사람들은 명예도 잃고 지위도 잃어버린다. 세상은 악하고 악(惡)은 선(善)한 사람들을 유혹한다. 유혹의 함정(陷穽)에 빠져 헤매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절제(節制)의 열매로 선(善)한 빛을 발휘하는 자가 되어 악한 세상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는 삶을
새해의 첫 절기가 봄의 입구에 듭니다. 드디어, ‘입춘’입니다. 옛날에는 입춘을 열심히도 기렸다고 합니다. 그날 한 해의 대길(大吉)과 다경(多慶)을 기원하려 수많은 의례를 베풀었습니다. 희끄무레한 흔적만 남기고 나달나달 지나간 세월 속에, 현시적인 의례는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조상들의 숨결이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어서일까요. 입춘이라는 두 글자만으로도 한 해가 양지에 들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입안에서 굴려 보며, 우리는 드러나지 않는 의례를 이어갑니다. 담쟁이는 작은 손을 잡고선 벽을 타고 오르는 숙명을 가지고 사는 것처럼, 입춘을 고대하는 것은 어쩔 도리 없는 우리의 숙명입니다. 우리는 양지에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너울거리는 강물에서 헤엄치기 시작한 연어는 광활한 연안으로 떠납니다. 휘몰아치는 파도와 요동치는 지느러미가 자신의 정체성이라 여기게 될 즈음, 연어는 잔잔한 강물에서 파닥이던 꼬리를 기억해 냅니다. 연안이 아닌, 강물에 자신의 정체성이 있음을 깨닫고, 연안으로부터 거슬러 강을 오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격랑의 시간을 거치면 가슴에 녹슨 훈장이 몇 박힙
재즈에 관한 깊은 안목은 없지만 나는 가끔 재즈의 음률에 빠지곤 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 위에 펼쳐지는 현란한 애드립, 블루스의 애조 띤 음계에 아프리카의 분방하고 경쾌한 박자, 속삭이듯 때론 흐느끼듯 흘러가는 악기들의 저마다의 음색 그리고 허스키한 가수의 읊조림은 가슴을 적시며 흔들어댄다. 어느새 곡조를 따라 흥얼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넓게 해석할 때, 세상의 모든 소리는 음악이고, 말은 노래이며 온갖 동작은 춤이 될 수 있다. 인류가 말로써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춤과 노래는 비롯되었다고 한다. 원시인류가 소리가 잘 울리는 통나무를 골라서 막대기로 두들기며 소리치고 껑충거리며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우리가 음악을 듣고 춤추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음악과 춤이 원초적일수록 본질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는다. 현란하게 치장되고 고도로 비틀어진 현대음악은 난해함을 무기 삼아 듣는 이에게 감상의 선택을 강요한다. 각국의 전통적인 민속음악이나 민요는 타 민족에게도 쉽사리 공감되지만, 발전과 변혁을 거듭하며 마침내 첨단을 달리게 된 요즈음의 일부 음악들은 전문적인 지식과 오랜 적응훈련이 아니면 가까이하기에 쉽지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포구는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1816년, 영국 함대의 선교사 바실 홀(Basil Hall)이 이곳에 도착해 조선 땅에 처음으로 성경을 전한 이후, 마량포구는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상징적인 역사를 품고 있음에도, 오랜 시간 동안 마량포구는 이 가치를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잊혀져 왔다. 이에 충청남도의회는 본의원을 대표로한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마량포구 역사·문화 축제를 위한 연구모임’을 구성하고, 지난 1년간 깊이 있는 정책연구와 현장 중심의 자료조사를 이어왔다. 단순한 축제 기획이나 이벤트성 사업이 아닌, 서천의 역사·문화 자산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지역 발전 전략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연구는 마량포구의 종교적, 역사적 상징성을 관광과 문화 콘텐츠로만 소비하지 않고,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기억으로 되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지역 주민의 생생한 목소리와 제안, 전문가의 자문, 유사 사례 조사 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정책 실행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례 제정 및 공간 조성 방안까지 함께 검토되었다. 연구모임을 통해 확인된 핵심은 명확했
요즘 서천군을 둘러싸고 ‘빚 때문에 재정이 무너진다!’, ‘재정 파탄 상태다’라는 이야기를 많은 군민이 접하고 있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군민 여러분에게 차분하게 사실에 근거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천군의 재정은 무너지고 있지 않다. 서천군의 지방채가 401억 원인 것은 사실이나, 이 빚은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빚이 아니다. 최근 한경석 군의원이 매년 11억 원의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서천군의 지방채는 2039년까지 원금을 분할 상환하는 장기 상환 구조로, 매년 같은 이자 부담이 반복되는 방식이 아니다. 실제 상환 구조를 살펴보면, 해가 갈수록 이자 부담은 점차 줄어들며, 마지막 해에 부담하는 이자 금액은 약 3천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충남도를 비롯한 여러 시군 역시 평균적으로 예산의 약 10% 내외를 지방채로 운영하는 반면 서천군의 지방채 비율은 5.3%로 이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재정 파탄, 위험한 수준이라는 표현은 객관적 사실과 거리가 있는 과장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지방채는 왜 발행했을까? 서천군의 지방채는 낭비성 사업이나 불필요한 사업을 위해 사용된 돈이 아니다. 지난
하늘은 바다에 담깁니다. 여름 바다에는 뽀얀 구름이 담기고, 겨울 바다에는 뿌연 구름이 담깁니다. 바다는 드높은 하늘을 담다가 별안간 버거운지, 계절이 진해질수록 차라리 바다는 하늘을 닮기를 택합니다. 옅어질 대로 옅어진 여름 하늘 아래, 바다는 옅게 번집니다. 짙어질 대로 짙어진 겨울 하늘 아래, 바다는 짙게 물듭니다. 바다는 하늘을 담아내다가 닮아갑니다. 겨울 바다의 위악에 노인의 주름진 손은 기운 데 또 기운 그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섬집아기 시절로 돌아간 양, 팔 베고 스르르 기다립니다. 쉴 때 쉬라는 바다의 위선 같은 배려일지 모른다고 되뇌며 기다립니다. 노인의 얼굴 앞으로 먹빛의 바다 거품이 성큼 가닿습니다. 듬성드뭇한 수염에 튄 바다 이슬은 금세 얼어버립니다. 바다의 깊은 곳은 캄캄합니다. 바다의 아린 추위에는 끄떡도 않고, 오히려 바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또 하나의 노인이 있습니다. 가장 추운 때에, 가장 뜨거운 숨을 내뱉습니다. 물메기는 새로운 생을 낳고, 자신의 생을 마무리할 채비를 합니다. 아무리 차가운 겨울 바다라도, 차가운 물속에서도 생명을 품고 낳는 꿈은 끓어오릅니다. 겨울 하늘을 닮은 바다에는 두 노인의 생애가 담깁니다.
연초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 마지막 주간을 맞이했다. 처음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모든 일에 예산이 있으면 결산이 있는 법이다. 결산하면 흑자인지 적자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재정적인 결산의 흑자 적자를 가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결산,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심판대 앞에 설 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 하면서 12월 마지막을 보내며 새해를 맞이할수 있길 바란다. 1. 우리에게는 창조주가 주신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사람은 이 세상 태어날 때 알몸으로 태어난다. 빈손들고 왔다. 그러나 창조주는 달란트를 우리에게 재능대로 주셨다.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뒤돌아보자. 성경은 한 사람에게 금 다섯 달란트 하나에게는 두달란 트, 하나 에게는 한 달란트를 각각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의 그릇 따라서 달란트를 달리 주신다. 적게 주기도 하고 많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달란트를 가지고 활용하는 것이다. 마25:14-30에 보면 2달란트, 5달란트 가진 자가 바로 가서 장사하여 배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받은 것이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주신 직분이 무엇이든지 머뭇거리지 않고 열심히 충성을 다
다사다난했던 2025년의 끝자락입니다. 교육 현장은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이른바 학맞통 논란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해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는 취지는 그 자체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육은 선의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법과 제도는 그 취지뿐만 아니라, 누가 무엇을 어디까지 책임지는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학습, 복지, 건강, 진로, 상담 등 학생 생활 전반에 대한 통합적 지원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범위는 매우 포괄적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 조항들입니다. 같은 법 제3조 제4항과 제5항은 학생맞춤통합지원의 실질적 수행 주체를 학교와 교원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육의 영역을 넘어서는 책임을 학교에 전가하는 구조입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조항은 제4조입니다.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경우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이 조항은 학맞통을 사실상 우선 적용되는 포괄법으로 만듭니다. 지원 필요성이 제기되거나 요구가 발생할 경우, 학교는 학맞통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모든 사안을 떠안게 됩니다. 그 결과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복지와 행정의 최전선으로
사색은 자신과 세상의 너른 품을 헤아리는 독수리의 눈이요, 내면의 심연과 사물 뒤편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이다. 그로써 삶의 뿌리와 세상의 본질을 캐내는 지혜의 곡괭이다. 사색의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복잡하게 얽힌 생각과 경험의 겹겹을 뚫고 들어가, 혼돈 속에 숨겨진 진실과 의미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사색은 물음표 하나에서 시작된다. 만약 사색이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면, 질문은 어둠을 밝히는 나침반이자 새벽 별과 같다. 질문이 없는 길은 눈 가린 아이처럼 제자리를 맴돌거나 엉뚱한 들판을 헤매게 만든다. 질문만이 사색이 나아갈 길을 밝히고,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존재의 이유이다. 하나의 답이 잠시 갈증을 달래줄지라도, 그 답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선 또 다른 물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물음의 꼬리가 다시 물음을 낳아 조금씩 진리에 다가가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가는 발걸음처럼 조심스럽고 끈질기다. 사색은 이성의 정원에서 피어나는 대화이면서도, 동시에 직관의 샘에서 솟아나는 감성의 영역이다. 사색의 경험이 쌓일수록 직관
구암 丘秉大(구병대1858〜1916)선생은 구한말 1906년 2차 홍주의병에 민종식과 함께 참여한 의병장으로 시초면 신곡리 태어났다. 1908년 12월 무주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약했던 의병대장 성준문과 문태수가 있는 장수군 문성동을 찾아가 지은 시이다. <편집자 주> 구암 선생은 장수군 溪北面(계북면) 文城洞(문성동) 골짜기에 있는 정자에서 무더운 여름에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詩(시)를 썼다. 정자가 만들어질 때 처마가 없다시피 한 짧게 만들어진 형태로 뜨거운 태양빛이 비친 모양이다. 그때 푸른 산의 해 그림자가 잠깐 가려주고 있으며 옛날 사람들도 취미가 같으면 함께 즐겼으며 현재도 취미가 같은 지인들하고 함께하니 즐겁다고 하고 있다. 작자는 홀로 술이 취하지 않은 모양이다. 정자가 있는 계곡의 입구는 무성한 숲으로 짙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버드나무에는 꾀꼬리가 앉아 있으며 맑게 흐르는 계곡의 물은 맑기만 하다. 또한 물총새와 부평초가 운치를 더해 준다. 웃고 이야기 하며 놀다가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늦게 귀가하는 길에 밝은 달과 별빛이 함께 비춰주니 도움을 주고 있지 않는가? 하며 하루의 즐거움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왜 그곳 文城(문성)
한산모시 중심의 글로벌 천연섬유 박람회 개최로 한산모시의 부흥과 천연섬유 산업 도약을 꾀한다는 서천군의 계획이 발표되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한산모시는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농업유산 18호로 지정되었다. 이에 대한 예산도 14.5억 원을 지원받았다.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모시 농업을 보전하고 그 가치를 계승하여 장기적이고 안정된 유산으로 관리하자는 목적을 전제하고 있다. 얼마 전 모시 농업 현황을 모니터링을 해 보았다. 확실한 전수 조사를 통한 현황을 알고 싶었다. 유감스럽게도 생산 현장은 모시 그루터기만 남아 있어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향후 5년을 장담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조사 대상은 모시 관련 특정 단체의 조직원 명단과 얼마 전 용역을 통한 충남발전연구원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고, 이는 서천군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모시 농업 일반현황이기도 하다. 경작실태, 생산물 현황, 향후 생산활동 가능 여부 등 재배 농가의 현재를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기초로 삼고자 하였다. 조사자료에는 모시 재배 식재 면적이 1만2,000여 평, 재배종사자 70여 명, 재배종사자 평균 연령 85세이며, 품종 구분은 불분명
가을에 대해 푸념하던 날을 뒤로 하고, 맹렬한 서늘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겨울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바람을 어디에 두고 걸어야 하는가’를 고심하곤 합니다. 바람을 맞서 걸으면 더 춥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바람을 등지고 걸으면 덜 춥지만,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려 갑니다. 삶의 주체로 걸음하는 것과 주도권을 잠시 넘기는 것,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일쑤입니다. 대체로는 세상의 관념대로 삶의 주체로서의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리라, 단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을 맨몸으로 맞닥뜨리며, 세상의 관념과 다른 운명의 관용을 경험하였습니다. 삶은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가 수두룩한 법입니다. 그때마다 번번이 주체로서의 자신을 의심하는 일이야말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종래에는 종종 주도권을 이양하는 것이야말로 운명이 내게 베푸는 관용이 아닐까, 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거대한 짐승마저 동면에 드는 겨울이라면, 왜소한 인간 또한 휴양에 드는 것이 섭리일 것입니다. 운명의 관용을 당연시 여겼을 때야, ‘부단히 애쓰는 것,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최고선이라 외치며 사람들을 각성시킬 필요가 있었을
월남 이상재 생가지에서 2025.10.25. 청소년 백일장/ 4컷 만화 공모/ 월남 이상재 선생 닮은꼴 찾기대회/미션게임- 독립 자금을 확보하라/ 부대 행사–기념식 문화 공연 나눔장터 모시개떡 체험 및 시식/분야별 행사를 이상재 선생 생가지에서 치르는 내내 한산이 자랑스럽고 서천에 사는 것이 좋다. 그 위에 공금란 대표가 있다. 이상재 선생의 언론인, 종교인, 사회 교육자, 닮은 점이 많아 그러하다 잘 자라준 초, 중, 고 학생들의 시 낭송과 시상식을 치르며 ‘도로시’라는 미국의 교육 학자가 남긴 유명한 시가 생각났다. 만일 아이가 나무람 속에서 자라면 비난을 배웁니다/ 아이가 적개심 속에서 자라면 싸움을/ 비웃음 속에서 자라면 부끄러움을/ 관대함 속에서 자라면 신뢰를/격려 속에서 자라면 고마움을/ 공평함 속에서 자라면 정의를/인정 속에서 자라면 자신을 좋아하는/ 받아들임과 우정 속에서 자라면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끊임없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다. 우리나라가 낳은 조상 중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신 역사적 인물들을 배우고 그들의 애국심과 남다른 인격을 본받는 것이다. 새삼 필자는 이상재 선생의 생가와 종지 교회와 마을을 기록하며 이
생명의 탄생을 귀가 빠졌다는 것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표현이다. 과문한 탓에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선조들은 출생의 타이밍을 귀가 빠져나온 시점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출산 과정에서 귀가 빠져나올 무렵은 태아의 신체 대부분이 아직은 모체 안에 있을 때이므로,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를 두고 정확한 기준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요즈음의 법률적 해석에 따르면 모체와 태아가 분리되는 시점을 출생의 시기로 보는 것이 통설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왜 옛사람들은 귀빠짐을 출생으로 간주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급한 성격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옛 분들은 우리보다 훨씬 여유롭고 너그러운 사고체계를 가졌기에 귀가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탄생을 인정한 것이 아닐까? 바깥세상의 온갖 소리가 아기에게 전달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에, 그 생명을 인격체로 대해주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귀빠진 날’이라는 발상에 함축되어 있다. 옛사람의 인본적 사고(思考)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귀가 빠지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모체가 수태할 때부터 우리 민족은 나
개인적으로 가을은 참 버겁습니다. 따뜻함이 채 식기도 전에 차가워집니다. 차라리 쌀쌀함이라도 느낄 틈이 있으면 덜할 텐데, 그럴 새도 없이 추워져 버리는 모양새가 쌀쌀맞기까지 합니다. 찰나에 불과한 정오의 볕을 내어줄 뿐, 냉기와 맞부딪혀야 하는 가을이 버겁습니다. 그럼에도 가을이 싫지 않은 이유는, 그 버거움을 마땅히 견뎌낼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꽃을 버림으로써 열매를 맺는 나무들의 고결함이, 바로 그 이유를 대신 증명해 보입니다. 조막만 한 노란 꽃잎 대신 소담하게 맺히는 감이라든가, 매끄러운 하얀 꽃잎 대신 화사하게 맺히는 사과라든가. 포슬한 노란 꽃줄기 대신 은은하게 맺히는 은행이라든가, 갸름한 하얀 꽃줄기 대신 그윽하게 맺히는 밤이라든가. 꽃을 잊고서 열매를 잇는 한 그루의 나무를 보고 있자면, 이 계절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장날에 늘어선 좌판 위는 이미 가을로 물들었습니다. 주홍색 감 한 알은 홍시이며, 선홍색 사과 한 알은 홍옥입니다. 엷은 봉투 안에는 연둣빛을 내는 수십 개의 은행알이, 노란 바구니 안에는 고동빛을 내는 수십 개의 밤송이가 가득합니다. 서늘함에 두껍게 옷을 껴입기 시작한 사람들 사이에서, 탐스럽게 일렁이는 가을빛에 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