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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제때 익는 것들, 김치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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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여 간의 휴직을 마무리하고, 학교로 돌아갑니다. 휴직 전에는 막연히 딸과 시간을 한껏 보내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휴직을 하고 보니 딸과 시간을 힘껏 보내야 하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한껏’이라는 단어에는 여유가 묻어났는데, ‘힘껏’이라는 단어에는 고뇌가 들어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며, 저는 생각보다 양가 감정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령, 다른 집 자식들은 일찍 크는 것 같다는 말은 내뱉기는 쉬워 하지만, 그 말을 듣는 것은 고역으로 여기는 식입니다.

 

아이의 속도와 나의 속도를 자꾸만 헷갈리게 되는 날들이었습니다. 무엇을 더 해줘야 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아직 시작하지 못했는지 가늠하느라 마음이 바빴습니다.

 

그러다 저의 어린 시절을 되짚었습니다. 기억의 꼭지들을 따라가다 다다른 설렘의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장면 중에는, 어느 날 갑자기 바뀌어 있는 집이 주는 신선함이 있었습니다. 집은 취향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아비투스처럼 집은 곧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되기도 하니, 더욱이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휴직 기간, 제가 마련한 기틀은 엄마가 물려준 집에 대한 기억을 저만의 방식으로 딸에게 넘겨주는 일이었습니다.

 

엄마는 항상 향기 나고 깨끗하며, 고풍스러운 집을 꾸려주셨습니다. 특별한 예절 교육이 없이도 공간을 통하여 물리적으로 매너를 갖추게 하셨습니다.

 

식탁의 모습으로 식사 예절을 만들고, 거실의 구조로 가족 관계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집의 기틀을 닦아 갔습니다. 딸의 자리는 변의 길이가 짧은 곳, 누군가는 거기를 상석이라고 부르는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사람들의 모습이 다 보이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표정과 행동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식기류도 웬만하면 세라믹이나 유리그릇을 사용하게 하며 조심성을 익혀가도록 하였습니다.

 

아이의 세계를 존중하지만, 결국 아이는 또 다른 세계로 나가야기에 그런 선택을 하였습니다. 엄마는 귀족이 귀족인 이유는 귀하게 대접하기 때문이라고 하셨고, 아이를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대접이 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돈된 공간, 물리적으로 매너를 각인시키도록 구성된 공간에서 아이가 자란다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틀을 세운다고 해서 모든 날이 단정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정돈된 공간이 늘 정돈된 마음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허탈감은 현실과 이상의 틈에서 천천히 굳어, 마음 한켠에 작은 응어리로 남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속도는 육안으로도, 심안으로도 체감되지 않았고, 저의 마음은 그 속도보다 늘 앞서갔습니다.

 

작년 초겨울 아이가 유치원에서 김장을 해왔습니다. 배추김치 세 포기를 빨갛게 무쳐왔습니다.

 

매콤한 양념과 설익은 배춧잎이 꼭 따로 또 같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더 익으면 먹자며,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었습니다. 며칠 전 아이는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다며 운을 띄웠습니다.

 

이제 김치볶음밥이랑 김치전을 먹냐며 웃으니, 유치원 급식에서 나왔다고 자신은 언니라고 너스레를 보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하얀 물김치를 담가왔는데, 빨간 김치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분명 엄마로서 잘 해내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날들이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위로가 되었습니다. 작은 손으로 배춧잎을 벌리고, 소금을 뿌리고, 양념을 문질렀을 그 시간을 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제 나름대로 매일 관문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배추김치 세 포기는 양념에 푹 물들어, 잘 익은 김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가 담가 온 김치를 꺼냈습니다.

 

김치를 꺼내 칼을 대니 서걱, 하고 잘 익은 소리가 났습니다. 빨간 국물이 도마 위로 천천히 번졌습니다. 익을 시간은 이미 다 지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팬을 달구고 반죽을 부어 김치를 한 움큼 얹었습니다.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지나온 시간들이 고소한 냄새로 서서히 달궈졌습니다. 아이가 키워지는 게 아니라, 시간 속에서 아이는 차츰 익어갈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멈춰 있던 순간은 하나 없었습니다.

 

식탁 위에 김치볶음밥이 올라왔습니다. 작년 아이가 담근 김치로 차려낸 한 접시, 알맞게 익은 한 접시였습니다. 어쩌면 저의 휴직도 그런 시간이었나 봅니다.

 

겉으로는 설익은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익어가던 시간. 이제 저는 학교로 돌아갑니다. 휴직 동안 무엇을 얼마나 잘 해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저 한결같이 품어만 주면, 아이는 제때 제 몫만큼 익어간다는 것. 그러니 이제 학교로 돌아가는 마음이 가볍습니다. 아이도, 저도 각자의 속도로 잘 익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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