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의 천둥 같은 말씀이 최근 널리 회자되고 있다.
선생은 일제치하의 암울한 상황에서 우리의 독립과 자강을 염원하셨다.
이를 위해 풍족히 살 수 있는 부력(富力)과 남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강력(强力)을 바라셨다.
그러면서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며 문화의 힘을 가장 높이 두셨다.
이는 무력과 외교에 집중하던 당시의 지도자들과 뚜렷이 차별되는 점이다.
민족 지도자로서의 선생의 혜안이 최근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다.
최근 K-팝을 필두로 이른바 <한류>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서구 주류 언론의 시각은 특이한 성공 사례 정도로 여겼다.
K-팝이나 영화의 성공은 대중문화의 영역이고 그동안 비유럽권에서도 종종 있어왔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콩쿨대회에서 임윤찬을 비롯한 한국의 연주자들이 잇달아 수상하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까지 이어지자 서구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본격적인 고급문화의 영역까지 한국이 능력을 입증하자 비로소 문화강국으로서의 한국을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구 선생이 문화의 힘을 갈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가 없는 민족은 군사력이 강해도 결국엔 문화강국에 흡수되거나 소멸되고 말았다.
징기스칸을 비롯한 여러 유목민족들의 사례가 그러하다.
문화가 낮은 민족은 존중받지 못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의 국가들이 역시 그러하다.
이처럼 문화는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타 민족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역의 문화예술도 다르지 않다. 서천의 문화가 곧 서천의 근본인 것이다.
먹고살기 바쁜 나라일수록 문화예술을 등한시한다.
경제가 악화되면 제일 먼저 타격받는 곳도 대부분 그 쪽이다.
좋은 공장 짓고 우수한 기계와 인력, 자본을 투입하면 고품질의 상품이 튀어나오는 굴뚝산업과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김영삼과 김대중정부는 1990년대 그 어려운 시기에 문화예술산업에 대해 규제에서 지원으로 과감히 방향을 바꿨다.
그들의 혜안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류는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류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면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문화예술이 침체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적 관점을 우선하기 때문인데, 당장의 성과를 중시하는 정치인들이 이런 경향을 보인다.
최근에 서천의 어느 군의원은 서천의 문화예술이 매우 낮은 수준이며 관객도 거의 없으니 이에 대한 투자는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문화예술의 가치와 필요성을 부정하는 편파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문화예술의 수준 운운하는 것은 듣는 이를 부끄럽게 한다.
배움의 단계를 제외하면 수준을 논하는 게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유명가수가 지역의 무명가수보다 가창력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를 쓴다고 볼 수도 없다.
김환기의 추상화보다 무명 화가의 그림이 더 나아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술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감성의 수준을 어떻게 논할 수 있는가?

그래서 지식인이라면 문화의 수준을 논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다. 모든 문화는 존중받아야 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경매장이 아니라면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어떤 작품이 어느 날 어떤 인기를 끌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수준이 낮다는 것이 관련 종사자의 역량을 말하는 것이라면 일부분 그럴 수도 있다.
서천은 문화예술 뿐만 아니라 인구와 재정, 각종 인프라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타 지역보다 열악하다.
문화예술인 뿐만 아니라 서천의 정치인들도 같은 범주에 있다.
그러므로 역량이 낮으니 제외하자는 주장을 하려면 본인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인재가 붙어있기 어려운 서천에서 그런 인재를 품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반성해야 한다.
정책적 우선순위를 논하는 것이라면 서로의 주장을 다툴 수 있고 협의가 가능하겠지만 수준 운운이라면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문화예술은 씨를 뿌리고 차분히 물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와 주민에게 접촉할 기회를 꾸준히 마련해주지 못하면 조금씩 시들게 된다.
서천의 여건에서 굳이 큰 규모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인프라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목적 홀’이 아닌 제대로 된 공연장과 전용전시장, 작은 문학관이 그래서 요구되는 것이다.
공주는 나태주풀꽃문학관을 2014년에 만들었고 최근에는 그 옆에 3층 규모의 큰 건물로 확장해서 운영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폄하하고 압박하는 군의원에게 묻고 싶다.
서천은 문화예술 수준이 유난히 낮으니 정책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공주에서는 나태주 시인을 활용한 문학관광사업에 성공하고 있는데 그의 고향인 서천에서는 왜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서천에는 전용전시장이 불필요한가?
그의 주장은 서천의 문화예술인을 싸잡아 폄하하며 주민들의 희망도 무시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주장이 되풀이되면서 문화예술을 업수이 여기는 풍조가 늘어나는 것이다.
한마음으로 노력해도 어려운 문화예술 육성을 그는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목소리 큰 집단의 편에 서기 위해 소수 집단을 전략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문화예술인도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높은 문화의 힘”을 갈구하셨던 김구 선생의 말씀을 되새기며 서천의 문화예술도 높여야 함을 인정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노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