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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화의 소중한 이야기] 귀 빠진 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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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탄생을 귀가 빠졌다는 것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표현이다.

 

과문한 탓에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선조들은 출생의 타이밍을 귀가 빠져나온 시점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출산 과정에서 귀가 빠져나올 무렵은 태아의 신체 대부분이 아직은 모체 안에 있을 때이므로,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를 두고 정확한 기준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요즈음의 법률적 해석에 따르면 모체와 태아가 분리되는 시점을 출생의 시기로 보는 것이 통설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왜 옛사람들은 귀빠짐을 출생으로 간주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급한 성격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옛 분들은 우리보다 훨씬 여유롭고 너그러운 사고체계를 가졌기에 귀가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탄생을 인정한 것이 아닐까?

 

바깥세상의 온갖 소리가 아기에게 전달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에, 그 생명을 인격체로 대해주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귀빠진 날’이라는 발상에 함축되어 있다.

 

옛사람의 인본적 사고(思考)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귀가 빠지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모체가 수태할 때부터 우리 민족은 나이를 먹는다.

 

그리하여 태어나자마자 1살로 인정된다. 이처럼 기막히게 근사한 관점은 생명의 존엄함을 웅변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거기에는 임신중절 따위의 파괴적인 인명 경시 발상은 발붙일 곳조차 없다.

 

서양식 나이 계산법과 비교하여 합리적이지 않다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식과 문화의 차이일 뿐이라고 믿으며 나는 이를 자랑스레 생각한다.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태아의 귀가 빠져나오는 순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되고, 하나의 운명이 부여되며 하나의 영혼이 결합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출산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분신과 첫 만남을 한다. 기대와 기쁨과 탄식이 교차한다. 생명의 위대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고통은 기쁨을 증폭시킨다.

 

9달의 수태 기간과 출산에 따르는 고통이 없다면 새 생명의 탄생은 일상적인 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오랜 준비와 마지막 피날레가 있기에 ‘귀빠진 날’의 새 생명은 축복의 대상이 된다.

 

최근 며늘아기가 둘째 아이를 낳았다. 가족의 탄생은 내 삶의 영역이 확대됨을 뜻한다.

 

아기는 세상의 일부를 갖게 되고 그것은 나와 연결된다.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가 하나 더 늘어나며 나는 가만있어도 부자가 되었다.

 

제 언니와 판박이인 아기의 태명은 출생 전부터 ‘티끌이’로 지어졌다. 태어나보니 이름과는 달리 덩치는 제법 있다. 아직 너무 어려서 울기만 하지만 제법 목을 가누려고 한다.

 

귀가 빠졌을 때의 아픔과 충격은 벌써 다 잊은 듯하다. 귀빠짐을 축하하기 위해 삼신할머니는 잊지 않고 엉덩이에 몽고반점을 찍어 주셨다.

 

최근에는 이러한 귀빠짐의 형태에도 변화의 물결이 나타나고 있다.

 

역술가가 점지해 주는 사주를 받아서 지정된 일시에 제왕절개를 시행하여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특정시간대에 수술예약이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자녀에게 좋은 사주를 맞춤하여 인생에 축복을 주려는 부모 심정을 어찌 탓하련만, 인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신의 영역에 속하던 출생의 신비를 인간의 손재주로 훼손시키는 것 같아서 찜찜하기만 하다.

 

아마도 출생일시로 운명을 판단하게 된 근거는, 인간의 출생이 자연의 섭리나 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를 통해 그 섭리나 의지를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출생일시가 인간의 손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된다면 거기에 신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한정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 출생일시에서 운명의 그림자를 읽어낼 수는 없게 된다.

 

의학의 발달로 많은 어머니와 태아가 제왕절개술의 혜택을 받아 건강한 출산을 하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불필요한 제왕절개를 남발하여 자연의 섭리에 도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게 느껴진다.

 

머지않아 ‘귀빠진 날’이라는 상징은 사라지고 ‘통째로 빠진 날’ 또는 ‘엄마 배 짼 날’이라는 무식하고 살벌한 표현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왜 이렇게 메말라만 가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나의 ‘귀빠짐’이 자랑스럽다. 먼저 태어난 귀로 세상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나중 태어난 입으로 조금만 말하련다.

 

‘귀빠짐’으로 아픔을 드린 어머님께 감사드리며, 내 아이들에게도 ‘귀빠짐’의 순수한 가르침을 계승시키고 싶다. 귀빠진 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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