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란은 울컥, 을 걸어 두었다 울컥, 이란 울음이 묻힌 말 오빠는 기다리다 지쳐 그늘을 묶었고 직박구리는 발을 헛짚고 그늘에 주저앉았는데 울음엔 빨강이 묻어 있었다 빨강은 울음을 문 영혼 떨어지지 않으려 공중의 바람을 함부로 만졌다 바닥에 닿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저 영혼은 주저앉은 직박구리의 둥지를 기억했을까 직박구리가 가지에 울음을 불어 넣을 때마다 빨강은 흔들림보다 야윈 발목을 걱정했을 것 우느라 휜 가지는 기다리는 맨발로 삭힌 혼잣말의 안부 빨강은 가지에 불어넣은 울음 조각이어서 오빠는 바닥에 그늘을 묶어 두었던 것 바닥에 그늘은 어떤 울음의 속죄였을까 울음은 어머니의 손등에 쓴 꽃물 든 연서였다
떨어지는 꽃잎 만큼 맑고 깊은 소리가 있을까 나무속에 들어찬 매미 뻐국새 별들의 운명까지 마지막 숨으로 뱉으며 막힘없이 떨어지는 것은 경외(敬畏)로운 것이다 바람 옷을 입고 등근 뼈를 깎고 푸른 핏물에 붉어진 몸을 말려 경지에 오르는 순간, 불안한 사랑은 지고 있는 것이다 겹겹이 쌓아 놓은 꽃살문 틈으로 바랜 빛들이 들어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은 찬란한 것이다 겨울 밤도 지고 피는 저, 아리고 아린 화농의 무리들
이른 아침부터 ‘엘리제를 위하여’ 가 트럭의 후진을 돕고 있다. 바람은 냉담 중인데 길섶의 오동나무는 책장처럼 부스럭거린다. 마당으로 나와 바라보다 대문을 열고 다가가니 이삿짐을 싣는 중이다. 이 엄동설한에 이사라니! 누구나 살면서 정착을 꿈꾸지만 정작 지내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처를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넓은 집으로 가거나 계획한 바를 어느 정도 이룬 마음으로의 이사라면 오죽 편할까마는 오늘처럼 추운 날에 이삿짐을 꾸리고 싣는 것은 편치 않은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그동안 자유롭게 왕래하며 지내진 않았어도 이웃의 떠나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짠하여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짐 싣는 인부들 몫까지 다섯, 여섯 커피, 잔을 세팅해놓고 커피를 분담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왠지 긴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바깥의 소란스러운 발걸음들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고 싶은지 기웃거릴 때 커피포트의 물이 끓기 시작한다. 서둘러 쟁반을 들고 나가 소리쳐 본다. 커피 들고 하세요! 한때 서울에 살면서 전세를 산 적이 있다. 내 집이 아니고 빌려 쓰는 처지가 되고 보니 이웃과 가깝게 지내기엔 왠지 서먹하여 상처를 입고 풀숲에 숨은
둥근 것을 보면 각 잡고 사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모서리의 힘이 필요했으므로 각의 힘을 빌려 ㅁ처럼 사셨다. 때때로 달을 보면 먹먹해지는 날 먹먹함을 말아 올린 담배 연기에 동그라미를 그려 하늘로 보내곤 했다. 얼 만큼 동그라미를 그려야 둥근 하늘이 될지 모른 채 ㅁ의 문을 열고 나가면 ㅇ를 만날 수 있는데 아버지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둥근 것들의 안부만 물어가며 그 흔적마저 지우고 사셨다. 태양이 오후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 시간 미움이 마음이 되는 아니, 아니 마음마저 까맣게 놓쳐버린 날
아무리 엎드려도 아픈 소리 내지 않는 철로 위로 바깥 어둠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철컥 , 철컥 지나는 곡선과 직선는 포옹 할 수 없는 흐릿한 장막 같아, 멀어진 길이 만큼 안부의 간격은 불안한 미로였다 저, 묵묵한 마중은 미로를 찾는 일 기운 생각들이 저물어 돌아오는 시간 서천역에 졸고 있던 바람이 눈에 젖는다 몇은 눈발에 젖고 몇몇은 가족 품에 젖는다 지금, 젖는 다는 것은 오랜 지명 속으로 체온을 찾아가는 길이었으므로 떠나는 바람의 방향은 알 수 없으나 외울 수 있는 11시 58분 무궁화호 무궁화 향기에 젖는 역사는 순환하며 꿈틀거렸고 한 번도 허기진 삶을 연착하지 않는 서천역에는 흰 비늘 꽃이 사륵 사륵 쌓였다
지고 피고 지는 것이 어디 나무뿐일까? 굽은 나무 아래 살려면 내 몸이 뒤틀려야 하는 것인데 어린 내게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굽은 나무는 그늘을 옮기는 바람을 봐야 하고 새의 그림자를 읽어야 한다고 넘치면 넘어지는 법이니 둥글게 구르며 살아가라고 하셨다 그늘의 공식을 잊고 살아서 였을까 나는 새의 날개를 꺾기도 했고 비 오는 날은 숲속의 어둡고 습한 방언을 듣기도 했고 나뭇 가지들의 삭히지 못한 이야기는 빗소리에 묻어 두곤 했다 잎은 빗소리를 달고 자랐고 질서가 바뀐 순간 서늘한 목이 잘려 우듬지를 넘어설 수 없으나 그래도 네 이름이 아름다운 건 유배당한 젊음에 햇살 들어 푸르기 때문이었다 멀어진 나무의 푸르름을 손 끝으로 만지면 쌓아 온 볕들이 하나씩 부러졌고 눈 부신 조각들은 다른 시간에 사는 것뿐 같은 공간에 서 있는 것이었다 물과 불이 그랬듯 곧는 나무와 굽은 나무의 공식은 낮아지고 작아져 모든 그늘을 용서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