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죽는다면
꼭 죽어야 한다면
청명하다 못해 시린 하늘가에
코스모스 기웃거리며 가을날을 여미게 할 때
슬퍼할 식솔도 모르게
저 세상으로 가고 싶다
썩어 없어질 육신 끌고
이 병원 저 병원 링거 꽂아놓고
연명하고 싶지 않다
그저 정갈한 작업복 입고
벌들이 돔부꽃을 거쳐
벌통 안으로 잠자리 들어갈 때
책상 위에 아내에게 편지 남기고
없는 듯
욕심 없이 살아 모은 푼돈
마지막 가는 길에 쓰고 남으면
내 사랑하는 제자들
전시회 한 번 열라고
도록값으로 지불하고 싶다
쓰던 벼루 붓 몇 자루
관에 넣고 하늘로 가서
맑은 날 아침
이슬 받아 벼루에 놓고
맑은 마음으로 먹을 갈고
넓은 하늘가 구름 위에
난 향기 가득한
그림 한 폭 그려
기러기 날아가다 찢어 놓은
구름가에 걸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