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이강선 충남 서천군의회 의원의 공직자와 주민들을 향한 ‘갑질’ 의혹에 대한 제보가 잇달아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A 제보자는 이강선 의원이 지난달 서천읍 시가지에서 군청 공무원 향해 업무 처리 미숙을 들어 퇴사를 요구하는 ‘갑질’ 행태를 보여다가 사과했다고 주장했다. A 제보자에 따르면 이날 해당 공무원은 OOO 치킨 인근 삼거리에 설치된 신호등 설치 후 본격적인 운영을 앞둔 현장 점검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 의원으로부터 업무 처리에 대한 질책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 의원이 ‘어 팀장 그거밖에 못 해요. 그 정도라면 책상 빼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등 해당 공무원을 향해 굴욕스러운 언사를 보였다고 제보자는 밝혔다. 이어 제보자는 이를 지켜본 한 주민이 이 의원을 향해 ‘의원 갑질’이라고 지적하자 바로 사과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제보자는 “해당 6급 공무원은 해당 부서의 팀을 이끄는 수장인데 공공장소에서 업무 처리 미숙을 들어 퇴직을 거론하는 등 인권을 무시한 행태는 정형적인 ‘갑질’이 아니고 무엇이냐?”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해당 공무원은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런 상황을 제삼자의 입장에 볼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 의원과 서로 어긋난 의견충돌로 인해 오고 간 토론 내용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소 사적인 자리에서 오고 간 언사가 공공장소에서까지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일정부분 통감한다”라며 기사 보도 자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지역의 봉사단체 회장에게 단체 비하 발언 등 ‘갑질’ 행태를 보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B 제보자에 따르면 이강선 의원은 해당 봉사단체 회장과의 업무상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단체와 관련된 기관의 지원사업에 대한 업무 협조를 요구하자 ‘이 단체는 봉사하는 단체지 OOO 꼬붕이냐’라고 단체를 비하했다.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 해당 단체 집행부와 회원들은 이 의원의 발언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으나,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강선 의원이 군의회 회의 석상에서 동료 의원에게 볼썽사나운 ‘갑질’ 행태를 벌였다가 사과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지혜 의원은 최근 가진 <SBN-서해신문>과의 자청 인터뷰를 통해 “이강선 의원이 본인을 향해 강압적인 태도로 회의 탁자를 때리고 고성을 치르며 서류를 던진 점에 대해 사과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후 몇일이 지나고 이 의원이 저를 찾아와 본인이 언제 그랬냐고 따지자 이를 지켜본 동료 C의원이 ‘이강선 의원이 당시 그랬다’고 확인해 사건이 일단락됐다”라고 전했다. 이를 두고 지역의 한 시민단체는 “이런 사안이 사실이라면 이지혜 의원 갑질에 대한 징계가 이뤄졌듯이 이강선 의원의 징계도 이뤄지는 것이 합당한 것 아니냐”라며 “군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대표자가 아닌 대변자인데 마치 모든 거머쥔 권력자인 양 고압적 행태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강선 의원은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일축하면서 “갑질 의혹에 대해 정확히 취재를 요청해 달라”라고 전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사정이 여의치 못해 취약한 주거 환경에서 거주하는 충남 서천지역의 한 고령 농업인의 주택을 쾌적한 생활환경으로 조성하고자 동서천농업협동조합(이하 동서천농협/조합장 이정복) 임직원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동서천농협에 따르면 마산면에 있는 해당 농업인의 주택은 툇마루와 흙벽과 목조로 지어진 정형적인 5~60년대 오래된 건물로 생활용수를 위한 수도꼭지는 마당 한 켠에 조리시설은 옛 아궁이 방식이 전부였다. 집안의 벽지와 장판은 언제 시공했는지 변색과 주름이 잡힌 상황이었으며 오래된 냉장고의 냉장실은 지역 후원회에서 제공한 듯한 반찬 몇 가지가 들어 있었으며 냉동실은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아궁이가 있는 옛 부엌에는 그나마 한 켠에 조리시설인 가스스토브가 있지만, 가스요금의 부담 탓인지 덮개로 가려져 있었고 난방시설은 그 흔한 보일러가 아닌 아궁이를 이용하고 있었다. 거기에 최근 쌀쌀한 날씨 탓에 난방을 위해 인근 산에서 땔감을 구하려다 넘어져 고령의 농업인의 발목은 파란 멍이 들어 있는 모습에 안타까움 더했다. 이날 이러한 상황인지를 모른 채 방문한 동서천농협 임직원들은 우선 현시대에 이런 주거 환경의 주택이 존재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에 이들은 주변에 방치된 쓰레기를 깨끗하게 치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령 농업인의 말벗이 돼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졌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도배와 장판을 교체하는 등 주거 환경 개선에 구슬땀을 흘렸다. 또 이 자리에 함께 참여한 이정복 조합장은 이 상황을 보고 안타까움을 김기웅 군수에게 전하고 한걸음에 현장을 방문한 김 군수에게 지원책 마련을 요구해 이에 합당한 지원책 마련을 약속받았다. 이와 관련 이정복 조합장은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정작 본인의 생활 여건을 뒤돌아볼 틈 없이 노년을 맞이한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다”라며 “보여주기식보다는 피부에 와 닿는 지원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고령 농업인을 위해 다양한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 농협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동서천농협의 이번 사업은 70세 이상 독거·취약·고령 농업인에게 말벗 등 다양한 맞춤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NH농협 서천군지부와 함께 ‘농업행복콜센터(1522-5000)’에 가입된 고령 농업인의 주거환경을 개선을 돕는다.
[sbn뉴스-서해신문·서해방송] 이지혜 충남 서천군의회 의원 징계 의결이 법정 공방으로 들어간 가운데 25일 이 의원이 행정사무감사특별위원회(이하 행감특위) 위원장직 수행을 요구해 또 다른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이 의원은 이날 군청 상황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징계의결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법원으로부터 인용됨에 따라 행감특위 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싶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가처분신청이 인용됐기에 본의원의 행정사무감사특별위원장 직은 유효하다”라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군의회 징계 의결로 홍성희 의원이 특별위원장으로 선임된 것은 무효”라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특별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병가를 신청한 공무원이 또 다른 상처를 줄까 봐 걱정돼 연락도 못 했다”라면서 “본인으로 인해 상처받은 분께 송구하다”라며 머리를 숙이기도 했다. 아울러 그간 공개된 갑질 의혹에 대한 반박과 함께 징계요구서를 보이며 징계 절차를 무시한 군의회를 비판했다. 앞서 이 의원은 행감특위가 시작한 지난 24일 김경제 군의회 의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행감특위 위원장직 수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로 위원장에 선출된 홍성희 의원이 위원장직에서 내놓지 않는 데다가 의원들의 분위기 역시 호응이 없는 등으로 또다른 마찰을 우려한 이 의원이 잠시 물러나면서 행감특위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군의회나 공무원 노조 측은 언론을 통해 이 의원의 행감특위 위원장 수행의 문제 제기와 함께 군청 공무원의 40여 건의 갑질 피해 접수를 근거로 고소·고발를 계획하는 등의 강경한 뜻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이날 오전 지역의 한 시민단체가 군청 주차장에서 이 의원의 정당성 지지와 함께 군의회 의장과 윤리특별위원회의 무리한 징계의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갖기도 했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충남 서천군의회 사상 초유의 사태인 동료 의원의 징계를 앞둔 상황에서 일부 의원들이 공개석상에서 노래 솜씨를 뽐내 논란이 되고 있다. 복수의 장항읍민에 따르면 홍성희·김아진·이강선 군의회 의원은 지난 13일 장항공업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제52회 장항읍민 화합경기 및 한마음대잔치에서 노래자랑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들 의원 중 홍성희 의원이 행사 개최를 축하한다며 장항읍민 위로차원에서 한 곡 부르겠다며 마이크를 잡았고 김아진 의원도 동참했으며 이강선 의원은 한 발짝 뒤에서 박수로 이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분위기와 그 자리에 참석한 장항읍민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이는 앞서 지난 12일 군의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이지혜 의원 징계 심사 전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회의를 통해 ‘출석정지 20일과 공식경고’ 의견을 전달받은 장항읍민들이 초유의 사태를 맞은 군의회를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날 무대 오른 일부 의원들을 지켜봤다는 한 장항읍민은 “동료의원을 징계에 회부 해 놓고 뭐가 그리 좋다고 노래자랑이냐”라며 “아무리 정치인이라지만, 최소한의 동료애를 생각한다면 그렇게까지는 못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한 장항읍민은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이 아프면 온종일 마음이 심란한 것인데 현역 의원의 징계를 앞둔 상황에서 이들이 보여준 모습이 과연 주민들을 생각하는 대변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한 장항읍민은 “행사를 주관한 체육회의 수장인 회장도 노래를 안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의원들이 노래자랑하는 것은 행사를 주관한 체육회를 무시하는 처사고 행사의 격만 떨어뜨려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반면 홍성희 의원은 일부 장항읍민이 지적하는 의미와 달리 고향인 장항읍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한 순수성을 강조했다. 홍 의원은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제보자의 의도와 달리 젊은이들이 많이 감소한 장항읍민 체육대회를 지켜보다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 순수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동년배나 선배님들의 ‘청춘’이라는 생각해봤으면 해서 ‘아빠의 청춘’의 노래를 부른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군의회 사태에 가슴이 비록 아프지만, 장항읍이 처한 현실을 의원으로써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자 동료의원들과 상의해 참여한 것이다”라며 “일부 장항읍민의 지적은 상당히 의도성이 보인다”라고 반박했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이지혜 충남 서천군의회 의원이 지난 19일 군의회의 징계 결정을 두고 군민께 사죄를 구하면서 그동안 벌어진 군의회 초유의 사태에 대한 과정을 낱낱이 공개했다. 이 의원은 이날 군청 자유게시판을 통해 본인의 징계 결정에 대해 군의원으로서 군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공식적 사과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군의회의 어두운 민낯을 공개해 개혁의 발판으로 삼으려다 군의회 32년 만에 열린 초유의 사태에 대해 가감 없이 밝히겠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는 “의원으로 윤리 심사 대상이 되고 징계 절차에서 징계 결정에 이르기까지 군의회는 무법지대, 무소불위의 힘과 권력을 발휘했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12일 일부 동료의원들의 관외 출장 관련 건으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사안에 대해 법제처와 행정안전부의 질의를 통해 ‘일부 의원이 출장계획서 형식으로 의장 결재를 받는 것만으로는 여비 지급이 가능한 공무 여행으로 인정 불가’란 답변을 얻은 후 의회 사무과 공무원에 예를 다해 해당 사안의 자료를 요구한 것이 이번 징계 결정에 발화점이 됐다”라고 전했다. 또 “자료 요청과정에서 사실을 인지한 것은 담당 공무원이 지난달 11일 문제가 된 관외 출장 계획서에 군의회 운영위원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곳에 공란으로 비워 놓고 그곳에 ‘전언 보고 필’로 수기 표기하고 해당 문서를 비공개로 처리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다음 날인 12일에 담당 공무원은 관외 출장에 나선 의원들과 동행했고 13일까지 정상적인 근무를 했다가 14일 갑자기 담당 공무원이 업무 스트레스로 업무배제를 받고 신경정신과 치료와 한 달 병가를 냈다”라고 밝혔다. “그러던 중 지난달 25일 갑자기 의회 사무과 직원들 이름으로 ‘서천군 이지혜 의원 갑질에 대한 의회 사무과 직원들의 입장’이란 제목으로 행정 게시판에 게재하고 그 내용을 지역 언론에 배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때부터 지역 언론에서는 의회 사무과 직원들의 입장문 내용을 연이어 대대적으로 기사화하고 방송에서 보도를 시작해 이에 본 의원이 사실과 전혀 다른 허위 또는 과장된 내용으로 현재 허위사실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해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지역언론에서 관련 보도를 이어가면서, 서천군 공무원 노조도 가세하여 본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 1일 본 의원의 징계요구서를 제출하는 등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군의회는 윤리특별위원회에 본 의원에게 사실관계자 진위 일체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징계안을 회부하고 이어 12일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서 심사와 징계에 대한 자문과 심의를 마쳤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6일 윤리특별위원회를 열고 본 의원에게 20여 분의 소명 시간을 부여하는 형식적인 소명 절차만 거친 다음에 곧바로 ‘출석정지 20일’과 ‘공개회의에서 사과’라는 징계를 의결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그다음 날인 지난 17일 군의회 본회의를 개최해 위 윤리특별위원회 심사 결과를 본회의에서 그대로 통과시켜 본 의원에 대한 징계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군의회가 군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투명한 서천군의회의 운영을 위하여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것인데 무엇이 두렵기에 같은 정당(국민의힘)이 4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의장님과 비례대표까지 지역구 초선의원을 총원 7명 중 6명의 만장일치로 징계를 요구하였던 것인지 아직도 납득할 수 없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행정사무감사특별위원장을 행정사무 감사에서 배제하기 위한 조직적인 음모와 각본이 아니냐는 세간의 일부 의혹을 종식하기 위해서라도 본 의원에 대한 조사는 신중했어야 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4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증빙자료에 관한 법률대리인의 법률 검토 및 소명자료 취합을 위해서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던 점을 강조했다. 또한, 방대한 징계사유에 대해 윤리특별위원회도 충분한 검토와 조사가 선행됐어야 하며, 증인 출석 요구 등을 통하여 사실관계에 관한 확인이 우선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징계요구 대상자인 본의원에게도 법률대리인과 충분한 법률 검토를 하고, 적극적으로 소명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은 자명하지만, 이번 사안과 관련하여 법률대리인의 법률 검토도 무시됐고 윤리특별위원회와 윤리심사 자문위원회에서 충분한 검토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증인 출석 요구 등을 통한 사실관계 확인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의장은 사안의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본 의원에게 사실 확인을 한 적이 없으며, 면담 요청도 거부하였고, 그 어떠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본 사안을 의결한 후 언론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기사를 냄으로 모든 책임과 잘못을 본 의원에게 있는 것처럼 주홍글씨를 찍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간은 추가경정예산 심의 기간으로 예산심의가 집행되는 기간에 긴급한 사안으로 처리될 만큼 긴급안건처리 된 것이 어떤 이유인지 되묻고 싶다”라며 “군의회가 본 의원에 대한 징계사유로 적시한 사유들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조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적극적으로 의정활동을 하면서 ‘여성이고, 초선이고, 젊은데 너무 튀지 말아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라. 그러다가 다칠 수도 있다’라는 충고를 여러 차례 들었고 ‘알고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못 본 척. 눈감아 주라’는 조언도 들었지만, 본 의원은 이 걸음을 멈출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청년 정치인으로, 초선의원으로 기존의 세대들에게 무참히 밟히는 것을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라며 “군의회 의원 징계 의결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서를 접수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지혜 의원이 지난 17일 법원에 제출한 징계 의결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은 지난 23일 대전지방법원 제1행정부 재판부로부터 인용돼 그 효력이 내달 2일까지 정지됐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충남 서천군 서천사랑상품권(이하 상품권)의 부정 유통 사건 발생으로 지역 상권이 술렁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또한, 상품권 업무를 수행하는 해당 부서가 부정 유통된 상품권을 두고 은폐하려다 사건을 더 키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무 처리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군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부정 유통된 상품권 1만 원권과 같은 달 27일 5만 원권 1장과 1만 원권 1장이 다음 날인 28일 1만 원권 1장 등 총 4장(8만 원)의 상품권이 발견돼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해당 부서는 이 과정에서 업무 처리에 관한 적절치 못한 안일한 행태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 결과, 해당 부서 관련 팀장은 최초 지난달 17일에 상품권 부정 유통된 신고를 접수한 채 부서장(과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보고하지 않는 업무를 부실하게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지난달 27일 또다시 부정 유통된 상품권이 접수되자 그제야 부서장에게 보고하고 서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다음 날 또다시 부정 유통된 신고된 상품권을 경찰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서천경찰서는 군청 해당 부서의 수사 의뢰에 따라 수사를 진행한 결과, 현재 파악된 것은 총 4장의 상품권으로 총 8만 원의 금액이 부정 유통된 것을 파악하고 지속해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발견된 1만 원권 상품권은 관내 편의점에서 발견됐고 27일 발견된 5만 원권은 전통시장에서 1만 원권은 편의점에서 28일 발견된 1만 원권도 편의점에서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는 부정 유통이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도록 조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서천주민자치참여연대는 지난 19일 군청 자유게시판을 통해 ‘서천사랑상품권 부정 유통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군민들의 피해확산 예방에 나섰다. 이 시민단체는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나 군민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예상해 즉시 군민에게 사건 발생 경위를 밝혀 ‘주의’를 촉구해야 함에도 부정 유통 상품권이 계속 대환 요구되자 그제야 마지못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상품권이 대환하고 나면 상품권에 ‘천공’(구멍 뚫림) 하거나, 앞면에 ‘폐기’도장을 찍어 관리로 다시 사용되는 부정 유통을 예방할 수 있음에도 관리부실로 인해 이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천군수는 상품권의 유통 및 관리 경로를 다시 한번 정확히 점검하고 부정 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도록 조속한 조치를 해달라”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해당 부서 담당 팀장은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해당 사건이 최초로 부정 유통 사건이 발생할 당시 숨길 목적이 아닌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행정 절차를 검토하는 중에 또다시 발생해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해당 부서장은 “그간 해당 부서 1명의 직원이 이 모든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이 같은 불상사가 발생했다”라면서 “이번 사건 계기로 은행처럼 폐기 과정 대책을 마련해 안전한 상품권 이용에 온 힘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충남 서천군의회 현역 의원이 중징계를 받는 등 군의회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후, 해당 의원이 법원에 징계의결 무효 확인 소송과 함께 신청했던 징계의결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이번 징계 절차는 윤리특별위원회에 참석했던 모 위원이 말한 것처럼 윤리특위나 군의회가 마치 무엇에 쫓기는 모습처럼 촌각을 다투듯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표결까지 단행한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더더욱 징계요구서에 적시된 품위유지 위반, 의회 위상실추, 권한 남용, 신분과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 등의 징계사유가 추상적으로 보였다. 또 사실관계를 명확히 조사해야 할 사안으로 징계 대상자로부터 충분한 소명을 듣고 쌍방의 상반된 주장을 자세히 검토하여 사실관계를 우선 밝힌 후 징계를 결정했어도 늦지 않았을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무엇에 쫓기듯 서둘러 일사천리로 징계안건을 의결하고 징계 대상자가 특위 위원장으로 있던 행정감사특별위원회 위원장도 서둘러 재선임하는 등 일련의 과정들이 석연치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 이지혜 행정 감사 특위 위원장이 행감장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매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징계요청서에 적시된 징계사유가 법률적 근거를 갖추었느냐는 문제와 윤리특위 위원의 제척사유 해당 유무 등에 관한 판단은 이제 법원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당장 2023년 집행부에 대한 행정사무 감사를 앞에 두고 행감특위 위원장이 2명이 되었다는 문제는 군의회가 얼마나 이번 징계안건을 조급히 판단하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징계 대상자인 이 의원이 소명 과정에서 징계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가처분신청을 대내외적으로 언급했음에도 법원의 결정까지 기다려 주지 못하고 서둘러 행감특위 위원장을 선임한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튼 앞일이 걱정이다. 당장 이지혜 의원이 법원의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따라 의회에 출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징계를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리위에 부친 동료의원 간 올바른 토론과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더더욱 군의회를 지원해야 할 지원업무를 맡는 의회 사무과 직원들과 어떻게 융화를 이루어 서천군의회가 원활히 운영될지가 걱정이다. 이번 초유의 현역 의원 징계사태와 관련하여 지역사회의 공통적인 견해는 ‘다들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의견들이었다. 서로 한 발씩 양보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자신만이 옳다며 극단적인 길을 선택한 군의회에 곱지 않은 시선을 내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의회를 조화롭게 이끌고 의회의 화합과 공정한 운영을 위한 책임이 있는 군의회 의장 또한 의회 파장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 어찌 되었건 이번 군의회 의원 징계의 결과 이를 부정하는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서천군 의회의 명예와 위상은 땅 위에 떨어졌다. 명예와 권위를 가치로 여겨야 할 의회의 위상이 실추된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의회는 본연의 직분과 부여된 역할마저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제라도 군의회 구성원 모두가 눈을 감고 하늘과 군민을 올려보기를 권하고 싶다. 누구나 자신의 주장이 옳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반박과 비난으로 대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이 같은 지나친 이기주의만으로는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없다. 특히 이번 군의회 의원 징계사태는 여·야간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개인적인 감정의 표출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제 의회 구성원 모두가 깃털처럼 가벼워진 서천군 의회의 명예와 권위를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불필요한 개인적 감정을 버려야 한다. 징계를 의결한 의원들이나 징계 대상자인 의원 모두 반성해야 한다. 군민을 걱정해 주라고 만든 의회가 군민의 걱정거리가 되었다는 군민의 비난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의회의 결정에 법원이 개입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개탄스럽지만 엎어진 물을 돼 담을 수 없듯이 지난 일을 되돌릴 수 없다. 징계를 결정했던 사람과 징계를 당해야 했던 사람이 한 공간에서 화합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모든 잘못은 네 탓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유지하고는 진정한 화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화합과 이해는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제 군의회 구성원 모두가 혹시 내가 잘못한 일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자리에 서서 실추된 군의회의 명예와 위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군의회 의장이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주기를 바란다. 군의회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군의회가 이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지 군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고장 옛 장항제련소와 마주한 후망산 아래 장암진성(長巖鎭城)은 금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입구에 설치되었던 수군진영성(水軍鎭營城)이였다. 장암진성의 수장은 종4품인 만호(萬戶)로 관장하도록 하였다. 장암진성은 백제시대 기벌포(伎伐浦), 고려 때 장암진(長巖鎭), 조선시대에는 서천포 장암진(舒川浦 長巖鎭)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곳 장암진성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많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1.백제의 부흥군과 나당연합군과의 백강전투와 고려 때 진포대첩의 승전지 신라와 당나라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이곳 장암진에 상륙한곳이며, 백제(百濟)가 함락된 후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에서 출전한 왜의 수군과 나당연합군이 장항 앞바다 금강에서 최후의 해전으로 왜군이 패한 백강전투, 고려우왕6년(1380년) 8월 이곳 장암진이 있는 금강 하구에 왜구가 500여척의 선단으로 부두에 정박하고 노략질 하였다. 고려정부는 해도원수 나세(羅世)장군이 이끄는 100여척의 군사로 최무선(崔茂宣)이 만든 화포로 정박하고 있던 왜구선단 500척을 불태워 수장하고 승전의 대첩을 이룬 역사적인 곳이다. 장암진성은 고려시대에는 변방을 지키는 수(戍-변방경비대)자리였다. 장암진성은 돌로 쌓은 석성(石城)이다. 조선 중중6년(1511년) 9월에 쌓기 시작하였다가 중지되었고, 중종9년(1514년)에 완성되었다. 장암이란 지명은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처음 등장한다. 그 후에도 일제가 강제합병하여 행정구역을 통폐합하기 이전의 구한말 지명은 장암리(長巖里)와 항리(項里)였다. 마을 첫 글짜 하나씩 따서 1938년도 장항읍이 태어났다. 장암(長巖)이란 지명은 장항제련소 굴뚝산인 전망산(前望山)과 장암진성 뒤 후망산(後望山)이 전체가 큰 바위로 이루어졌기에 장암(長巖)이라고 하였고, 항리(項里)는 금강의 입구를 뜻하는 지형의 마을 이름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전망산과 후망산의 이름은 장암진성(長巖鎭城)이 두 산의 아래에 군사시설이 주둔하여 산위에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망루역활을 하였던 산이기에 망산(望山)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후망산에는 고려시대부터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운영되어 오다가 서천 남산의 봉수대가 설치되면서 후망산의 봉수대는 폐지되었다. 고려 말 목은 이색(李穡)이 지은 한산8영 시(韓山八詠 詩) 중 원산수고(圓山戍鼓)에 원산(圓山-화양면사무소 뒤산)에 “봉화 날리고 수자리 북소리 울린다.”라는 것을 보아도 고려시대부터 봉수대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장암진성의 석재는 후망산의 석재를 이용하여 성을 쌓았다. 재질을 보면 후망산의 바위와 같은 재질로 확인된다. 장암진성의 뒷산 후망산은 기우제도 지낸 곳이다. “용당에서 남쪽으로 마주 보면 장암포구/그 위에 교목 그늘 아래 황량한 사당/동남으로 향하는 배를 신령에게 비나니/노래와 춤 분분하고 술과 고기도 듬뿍/ 몇 년 전부터 꽤나 심한 풍우의 재해/사람이 불성실해 신령이 복을 안 주는지/ 내가 한가히 노닐지만 마음에 걱정되어/ 천리에 내 낀 파도 괜스레 눈에 그득/” 이와 같이 우리고장 인물 가정 이곡(李穀)선생의 가정집에는 금강을 지나는 배들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음을 알 수 있는 시(詩)가 남아있다. 2. 장암진은 고려시대 정치인들의 유배지 이곳 장암진(長巖鎭)은 바닷가의 외딴 곳에 수군진영(水軍鎭營)으로 여러 정치적인 인물들이 유배를 오기도 한곳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공민왕14년(1365년)에 신돈(辛旽)의 무고로 예성군(芮城君) 석문성(石文成)이 이곳으로 유배당했다.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보면 우왕2년(1376년) 가을 7월에 사헌부가 탄핵하기를, 전교부령(典校副令) 신인보(申仁甫)가 3품 직함을 거짓 칭하였고, 또한 죽은 낭장(郎將) 박동조(朴東朝)의 아내와 간통하였으니 법에 의하여 논죄를 청하여 곤장을 때리고 이곳 장암수(長巖戍)에 귀양을 보냈다. 그런데 고려사에도 거론되지 않은 평장사(平章事) 두영철(杜英哲)이 이곳 장암진에 유배당했다고 그 일화가 1656년 실학자 유형원(柳馨遠)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찬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와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에 반복적으로 실려 있는 점이 이채롭다. 고려시대 3명의 유배객 중에 두영철(杜英哲)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656년에 편찬한 유형원(柳馨遠)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의 기록을 보면, 서천군 만호진(舒川郡 萬戶鎭-장암진)에 고려시대 두영철(杜英哲)이 일찍이 정치적으로 이곳 장암진(長巖鎭)에 유배되었는데, 어떤 노인과 친하게 지냈다. 그 후 유배가 풀려 조정의 부름을 받고 돌아갈 때에 노인이 말하길 구차하게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에 대해 경계하니, 두영철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훗날 지위가 평장사(平章事-정2품)에 이르렀는데 다시 죄에 걸려 좌천되어 유배가는 길에 이곳 장암진을 지나게 되었는데 지난 장암진 유배당시 친하게 지냈던 노인이 그를 빗대어 노래를 지었다. 그 노래가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익재난고(益齋亂藁)소악부(小樂府)에 전해지는 장암곡(長巖曲)이다. “폴짝대는 참새야 너는 어찌하여/그물에 걸린 새끼 참새가 되었나/보라는 눈은 어데 두었나/가련타 그물에 걸린 어리석은 참새여/장암은 사람을 저버리지 않았는데/사람은 어이하여 장암을 저버렸나/----중략--- /가고 오는 길 장암이 우뚝이 내려다보니/갈 적에 명심하더니 올 적에 부끄러움뿐/ --중략 --/떠날 때 준 한마디 경계가 가볍지 않았네/참새가 파닥댄들 어찌 그물을 벗어나랴/맹호가 노리는데 결국 함정에 빠졌구나/--중략--/연자방아 나귀처럼 갔던 길을 맴 돈다네/그대는 다시 천리 먼 길을 유배 가니/--중략--/ 아첨이나 하는 소인에게 말하노니/ 장암곡 이 노래 한번 들어 보아라/” 1908년 4월30일자 대한매일신보의 장암진곡의 두영철 유배에 전해오는 기사가 있다. 두영철이가 다시 유배 길에 이곳 장암진에 들러 그 노인을 찾았으나. 노인은 바위에 걸터앉아 장암곡의 노래를 불렀다. 그 노인은 만나고자 하였으나 홀연 사라지고 만나지 못했다는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3. 일제강점기 장항제련소 부지 확보를 위해 장암진성 석재이용 물막이 공사 일제강점기 장항제련소를 건립하면서 부지확보를 위해 장암진성의 석축을 헐어다가 물막이 공사인 축항공사 자재로 활용하여 지금의 장암진성 앞 성곽은 사라지고 없다. 이러한 성곽석축이 헐리는 기사가 동아일보 1935년 4월 14일자에 보도되었다. 기사내용에, “백제시대부터 운영되었던 수군진영인 장암진성의 성곽이 지난 2월부터 시작되는 조선제련소 공사에 해면 매립하는 자재로 오랜 역사를 갖은 장암진성은 헐리는 중에 있다”라고 아쉬움의 기사가 보인다. 4. 장암진은 모래찜질의 풍습이 이어지고 있는 곳 장암진에 유배 온 유배객들 한가로이 지낼 때 모래찜질을 하였다는 풍습의 장소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조선시대 해동지도를 보면 장암진성과 전망산 장항제련소 바위산 사이로 배가 정박 할 수 있도록 깊숙이 들어온 해안으로 형성되었고 남쪽으로 넓은 백사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장암진의 백사장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온 장항송림리 모래찜질장소는 매립공사로 옛날은 모래사장이 없어짐에 따라 위치가 현재 사용하는 서쪽 편 바닷가로 이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전해오는 모래찜질의인 모래의 날이 음력으로 4월 29일인데, 당초의 모래찜질의 날은 한여름인 말복 전,후로 정해졌었다. 중외일보 1928년 8월 12일자 보도에, 서천군의 사욕장(砂浴場-모래찜질장)에 옛날부터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행사로 말복(末伏)을 전.후로 1일 하루에 10,000명이 운집하는데, 장항의 장암에 5,000여명, 마서면 죽산리(하소)에 4,000여명이 대부분 부녀자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모래의 날 행사가 음력 4월 29일로 언제부터 변경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모래의 날이 음력4월29일로 변경된 것은 10월1일로 지정되었던 군민의날을, 1966년4월29일 비인공업단지 기공식과 서천군청 새 청사 준공식의 뜻깊은 축제의 날 이였기에. 1967년3월22일자 군정자문회를 열어 4월29일을 군민의 날로 변경하게 되었다. 군민의 날 변경과 연관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모래찜질로 무더위 대서(大暑)날에 삼양해수욕장에서 매년 모래찜질을 하고 있고, 일본 가고시마 이브스키 해안가에서도 뜨거운 여름철에, 두바이에서도 한 여름철 달궈진 모래를 맨발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모래로 찜질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방자치와 민선 자치단체장 제도가 뿌리를 내리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건 지역축제가 난무하고 있다. 지방마다 저마다의 지역관광 인프라와 지역 특산물을 앞세워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축제가 전국적으로 2,000여 개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 지역만 하더라도 얼핏 잡아 10여 개 이상의 축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지만, 축제장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외지 관광객들을 유치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매년 특성 없이 되풀이되는 지역축제는 이제 관광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지역축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어디를 가나 그게 그거고, 지역 특산물은 외면한 채 허가받은 야시장으로 둔갑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 지자체일수록 그 폐단에 대한 지적은 높게 일고 있다. 적은 예산으로 각종 축제에 쪼개 쓰다 보니, 축제에 대한 홍보비나 운영비 충당을 위하여 지역 특산물과 관련 없는 야시장을 끌어들이고, 이름 없는 무명 가수들이 무대를 꾸미며 이제 더 이상 관광객들의 외면 속에 지자체들의 골칫거리로 변질하여 가는 것이 지역축제의 현실이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들다 보니 바가지요금이 횡행하고 온갖 부정한 상술이 판을 쳐 축제가 끝나고 나면 지자체마다 각종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축제가 절정기를 이루는 5월에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축제하지 않는 고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지자체별로 축제가 중복되어 적은 관광객들의 분산으로 제각기 아우성친다. 우리 서천군도 마량진행의 광어·도미 축제와 장항항의 꼴갑 축제 일정이 겹쳐 관광객 분산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렇다고 수년째 각종 축제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일부 의식 있는 지자체들은 지역축제의 통폐합을 거쳐 중복을 줄이고, 드론 불꽃축제 등 새로운 이벤트를 선보이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으려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천군도 관광 축제를 주관하는 단체 등에서 이벤트의 다양화 등을 통하여 관광객 유치에 골몰하고는 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그 결과가 돋보이지 못하고 있다. 민선 8기 들어, 새로운 김기웅 정부가 지역의 대표축제인 한산모시문화제의 성격을 축제에서 문화제로 바꾸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산모시짜기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지역 향토문화제로 그 성격을 바꾸려 시도하고 있다. 문화제와 축제는 엄연히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였지만, 예년의 방대한 예산을 삭감하는 과정에서 반발 또한 정치적 부담으로 남겨 있다. 경제 군수를 표방한 김기웅 군수가 한산모시문화제의 지역경제 파급효과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보이며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장항 송림욕장에서 ‘맥문동 축제’를 새롭게 열기로 하였다. 김 군수는 2022년 이웃 군산에서 열린 ‘수제 맥주 축제’를 예로 들며, 젊음과 재즈가 맥문동 보랏빛 향기에 물든 새로운 지역축제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에 모티브를 둔 새로운 축제문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축제마다 구태의연하게 등장했던 야시장이니 품바 공연이니 하는 이벤트를 지양하고 21세기 MZ시대에 부응하는 거리 공연과 재즈 열풍을 시원한 바닷가 송림욕장에 불어 넣으며 지역에서 생산된 수제 맥주 판매를 통하여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전문 경영인 출신의 경제 군수답게 지역축제도 투자가치와 투자승수를 계산하겠다는 전형적인 경제 논리로 지역축제를 내다보겠다는 이론이다. 물론 김 군수의 경제 논리가 새로운 맥문동 축제에서 그 효과를 발휘하여 축제가 지역경제에 부(富)를 창출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구태의연하고 진부했던 지역축제에 변화의 물결을 부어 넣으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 서천군 축제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기왕 지역축제라면, 지역 특산품 홍보에 주력하려는 노력이 미진하다는 점이다. 한산모시문화제나 각종 해안가 수산물 축제장에 서천군의 주력 지역 특산품인 서래야 쌀과 서천 김 한산소곡주의 전문 홍보부스가 부족한 점이 안타깝다. 기왕에 어렵게 유치한 외지 관광객들에게 이 기회에 지역 특산품을 홍보하여 지역 농·수산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려는 서천군의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주꾸미, 광어·도미, 꼴갑, 전어 축제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똑같이 따라 하는 지역축제에서 이제는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관광객들은 기대하고 있다. 시대는 변화를 요구한다. 오늘도 끊임없이 지역축제는 문을 열고 문을 닫는다. 지역축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의 구태의연했던 야시장과 품바로 의존하려는 안일함을 버리고, 새롭게 관광객을 유혹할 수 있는 변화의 물결에 합류해야 한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장동혁 의원(국민의힘/보령·서천)이 보령시와 서천군의 내년도 현안 사업 예산확보를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장 의원은 지난 22일 세종시 정부청사를 방문해 부처 장·차관 등을 만나 지역 숙원사업들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내년도 정부예산 반영을 요청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는 지역 기업과 소상공인 지원대책을 논의하고, ‘보령 지식산업센터’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보령센터’건립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과는 ‘국도 21호 2공구와 국지도 68호선’과 같은 신규 도로 사업들을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 기본계획’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서천군이 ‘항공보안장비시험인증센터’와 함께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항공안전보안산업 지원센터 건립’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환경부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금한승 기후탄소정책실장에게 ‘녹생융합클러 조성 기본계획’에 ‘바이오가스’ 분야 확대 필요성을 전달하고, 신진수 물관리정책실장을 만나서는 ‘웅천천의 국가하천 승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밖에도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국장과는 ‘농촌협약’ 등 지역 농업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당부했다. 장동혁 의원은 “정부 장·차관은 물론 해당 실무자까지 만나 지역 현안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예산 지원을 강력하게 요청했다”라며 “앞으로도 수시로 정부 관계자들과 직접 소통해서 정부예산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방문에는 김동일 보령시장과 김성관 서천부군수가 동행해 힘을 보탰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김윤태 대한노인회 충남 서천군지회장이 ‘노인복지조례 일부개정안’을 놓고 서로 힘겨루기하는 서천군과 서천군의회를 겨냥해 서천 노인인구 약 2만여 명을 대표해 일침을 가했다. 김 지회장은 지난 16일 ‘노인회의 역할과 노인보다 어른이 돼야 하는 이유’라는 입장문을 통해 “어찌 노인이 선진문화를 견학하는 것이 사회에 보탬이 되지 않고 예산의 낭비로만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서천군 인구의 39.5% 약 2만여 명의 노인들에 대한 복지정책이 무엇이고 무엇이 있나? 묻고 싶다”라며 “서천군과 서천군의회는 2만여 명의 노인들에게 답변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라고 촉구했다. 그는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는 청소년, 사회단체별로 다양한 영역에서 선진지 견학을 통하여 선진문화를 견학하고 각 분야 삶의 풍요로움을 만들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서천군 역시 초등생 국제 우호 도시 문화탐방이나, 중학생 나라 사랑 역사 탐방 해외캠프, 참전유공자 해외 전적지 순례 등 많은 사례가 있다”라며 “넓은 세상을 바라보도록 어른들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 지회장은 노인을 존경하고 받드는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성숙해진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누구나 부모가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면서 성년이 되고 결혼하여 부모가 되어 또다시 나의 부모와 같은 삶의 과정을 살아간다”라며 “세월이 각박해지고 어려울수록 노인을 존경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성숙해지고 살맛 나는 사회가 된다”라고 당부했다. 이어 “젊은이와 노인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욕망과 행동을 절제할 줄 아는 미덕을 길러야 한다”라며 “그것은 고대 아테네의 소크라테스 때부터 저 멀리 동양의 공자 이전부터 강조되어 온 불변의 진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노인이든 젊은이든 절제의 미덕을 배우고 실천할 때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성장하고 세상은 아름다워지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지회장은 노인복지조례 일부개정안의 주요 골자인 해외 문화역사 탐방에 대한 당위성도 주장했다. 그는 “서천군 지방재정자립도가 충남도 내 최하위인 것을 우리 노인들이 왜 모르겠냐?”라며 “이에 따라 해외 문화역사 탐방 시 자부담 20%를 처음부터 서천군에 제시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 노인회관에 2019년 2월 15일 입주하면서 옛 노인회관 토지, 건물을 서천군에 기부채납(3억 원 상당)을 하였고, 행정자치부의 특별교부세(2억 원)를 받아 현 노인회관 4층 회의실(75평)을 증축하는 데 보탬을 주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2만여 명의 노인들 복지향상과 각종 건강 프로그램 운영, 공동취사, 독거노인 관리, 노인 일자리 1,227명 관리, 노인대학·무료 급식소·행복경로당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김 지회장은 노인이 많은 사회보다 어른이 많은 사회가 되어야 하며 더 많이 배우려 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인이 많으면 사회가 병약해 지지만 어른이 많으면 사회가 윤택해지게 된다”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되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는 사람과 지혜를 가진 어른이 되는 사람도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노인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고 현재에 머무르지만, 어른은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배우려 하는 사람”이라며 “이에 세계적인 장수국가이고 노인회 조직도 우리나라 경로당과 유사한 점이 많고 비용이 저렴해 해외 문화역사 탐방 국가를 일본으로 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천군의회 제311회 제1차 정례회기 중 지난 16일 열린 의안심사특별위원회에서 ‘서천군노인복지조례 일부개정안’이 보류함에 따라 오는 22일 정례회 안건 상정에 따른 의결에 귀추가 주목된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의회 현역 의원이 중징계를 받는 등 군의회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군의회는 지난 16일 윤리특별위원회를 열고 이지혜 의원에 대해 20일 출석정지·공개 사과 등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날 비공개로 열린 윤리특별위원회에는 위원 5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회 사무과 직원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 이뤄졌으며 약 3시간 회의 끝에 참석 위원 5명 중 3명이 최종 중징계 결정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군의회는 징계 대상자인 이 의원을 제외한 6명의 전원이 공직자 갑질 논란 등 5개 항목의 징계사유를 들어 A4 용지 36쪽 분량의 방대한 징계요구서를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출해 심사를 요구했다. 이에 윤리특별위원회는 징계 심사 전 지난 12일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회의를 통해 이 의원에 대한 출석정지 20일과 공식경고 의견을 전달받았으나 이날 한 단계 위인 20일 출석정지·공개 사과를 의결했다. 이지혜 의원의 징계사유 5개 항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군의회 사무과 직원 및 군청 직원에게 지속적인 갑질 및 강압적인 행동에 의한 의원 품위유지 위반이며 두 번째로 언론에 제공한 입장문 및 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작성한 게시글 등에 의한 군의회 위상 실추이다. 세 번째로 군 보건소와의 이해당사자로부터 지속적인 교통편의를 받고 보건소 계약업무에 관여하는 등 의원 청렴의무 위반이며 네 번째로 관내 S 병원을 불시에 방문해 병원 측의 허가 없이 응급실, 장례식장, 기타 병원 내부 등을 임의로 불법 촬영하는 등 권한 남용이다. 다섯 번째로 군청 사회복지실에 개인정보가 포함된 원본 자료의 제출을 과도하게 요구하고 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 등의 이유에 의해 곤란하다는 집행부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인 요구를 하는 등 신분과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이다. 이와 관련 이 의원은 이날 징계 결정에 앞서 참석한 자리에서 징계요구서에 관한 내용에 대해 소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이 의원이 본인이 선임한 변호사를 함께 소명하는 자리에 참석하려다 의회 사무과 직원들의 변호사 입장을 제지하는 등 한때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징계 결정에 이지혜 의원은 법률 검토 후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 의원과 법률대리인인 김성진 변호사는 sbn서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절차상 하자를 들어 본회의에서 징계 의결 확정 후, 곧바로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하여 사법적 판단을 구하겠다”라고 밝혔다. 또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중 제척사유에 해당하는 의원이 위원으로 참석한 점과 위원회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 충분한 조사나 증빙 없이 징계를 결정하였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36쪽이나 되는 방대한 징계사유서에 대해 징계 대상자에게 충분한 소명의 시간과 기회를 부여해야 함에도 불구 소명의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지 않는 등 절차상 하자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윤리특별위원회 속에서도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윤리특별위원회에 징계 심사에 참석했던 A 위원은 sbn서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위원회가 마치 무엇에 쫓기는 모습처럼 촌각을 다투듯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표결까지 단행한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의원에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쌍방의 상반된 주장을 자세히 검토해 사실관계를 밝히고, 징계 심사 대상자에게도 충분한 해명 기회를 부여했어야 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서천군의회의 징계 의결을 두고 이지혜 의원이 징계 의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할 것으로 보여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천군노인회는 1954년 3월 1일 창립되었고 현재 14개 읍·면 분회 331개 마을경로당과 1만 3,000여 명의 회원으로 조직됐다. (2023. 3. 10. 현재 노인인구 1만 9,674명 39.5%) 서천군노인회 회원은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독립 전후 1935년~1955년에 태어난 회원들이 대부분이다.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이다. 우리 세대는 농경시대, 산업화 시대,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장이 있었다면 현재는 각 마을경로당의 노인회장들이 2만여 명의 노인들 복지향상과 각종 건강 프로그램 운영, 공동취사, 독거노인 관리, 노인 일자리 1,227명 관리, 노인대학 운영, 무료 급식소 운영, 행복경로당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천군노인회에서 해외 문화역사 탐방계획을 세운 것은 외국의 경로당 운영 및 장수 노인들 일상생활 현황 및 다양한 체험을 하고자 함에 있다. 대상 국가는 가까운 일본이 세계적인 장수국가이고 노인회 조직도 우리 경로당과 유사한 점이 많고 비용이 저렴하여 선택했고 자부담 20%는 처음부터 관계기관에 제시했다. 지방재정자립도가 충남도 내 최하위인 것을 왜 모르겠나? 그래서 현 노인회관에 2019년 2월 15일 입주하면서 옛 노인회관 토지, 건물을 서천군 노인회 이사회 결의에서 서천군에 기부채납(3억 원 상당)을 하였고, 행정자치부의 특별교부세(2억 원)를 받아 현 노인회관 4층 회의실(75평)을 증축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5월은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또한 5월은 청소년의 달,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언행반치(言行反致). 즉, 입으로 말하고 행동은 반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어른을 영어로 adult(완전히 믿을 만한 사람)로 번역하지만, 우리말에 있어서 어른은 영어로 번역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어른에 대한 사전적 의미로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어른은 단순히 나이가 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른에게 주어진 책임과 도리가 우선되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어른은 어른다워야 어른으로서의 대접받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어른은 나이가 많으면서 그 나이에 맞는 덕을 갖추고 덕을 베풀 줄 알며 사리 판단이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며 욕심에 좌우되지 않는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동안 앞서간 어른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왔던 것 같다. ◇노인이 많은 사회보다 어른이 많은 사회가 되어야 노인이 많으면 사회가 병약해 지지만 어른이 많으면 사회가 윤택해지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되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는 사람과 지혜를 가진 어른이 되는 사람도 있다. 노인은 나이를 헛되이 날려버리는 사람이지만, 어른은 세월이 지날수록 성숙해지고 지혜로움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노인은 외적인 머리만 커지는 사람인 반면에 어른은 지혜로운 마음이 커지는 사람이다. ◇더 많이 배우려 하는 어른이 되어야 노인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고 현재에 머무르지만, 어른은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배우려 하는 사람이다. 또한, 배우지 않는 노인은 노력도 하지 않고 부족한 것을 채우려만 하는 사람인 반면 어른은 넉넉하지만, 더 많이 채우려고 노력하며 넘치면 부족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비우게 되면 또 채우려 하는 사람이다. 노인은 자신을 밟으면 참지 못하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을 하지만은 어른은 자기를 딛고 올라서라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다. 노인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만, 어른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아 여행을 떠나며 즐거워한다. ◇노인을 존경하고 받드는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성숙해진다. 세월이 각박해지고 어려울수록 노인을 존경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성숙해지고 살맛 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누구나 부모가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면서 성년이 되고 결혼하여 부모가 되어 또다시 나의 부모와 같은 삶의 과정을 살아가게 된다. 젊은이와 노인에 이르기까지 어른이 어른으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욕망과 행동을 절제할 줄 아는 미덕을 길러야 한다. 그것은 고대 아테네의 소크라테스 때부터 저 멀리 동양의 공자 이전부터 강조되어 온 불변의 진리는 어른의 섬김이다. 노인이든 젊은이든 절제의 미덕을 배우고 실천할 때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성장하고 세상은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보도록 어른들께 기회를 제공해야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는 청소년, 사회단체별로 다양한 영역에서 선진지 견학을 통하여 선진문화를 견학하고 각 분야 삶의 풍요로움을 만들어 오고 있다. 어찌 노인 어르신만이 선진문화를 견학하는 것이 사회에 보탬이 되지 않고 예산의 낭비로만 단편적인 생각을 하여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아 이해할 수가 없다. 초등생 국제 우호 도시 문화탐방이나, 중학생 나라 사랑 역사 탐방 해외캠프, 참전유공자 해외 전적지 순례 등 많은 사례가 있다. 끝으로 서천군 인구의 39.5% 약 2만여 명의 노인들에 대한 복지정책이 무엇이고 무엇이 있나? 묻고 싶다. 서천군과 서천군의회는 2만여 명의 노인들에게 답변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 작금의 어르신들에 대해 베풀고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 마지막 삶의 기회를 배려해주실 것으로 기대해 본다.
네 분의 대통령 집권 당시 청와대 출입 기자로 그분들의 공사를 가까이서 봐왔고, 기사로 옮겼던 터라, 알려지지 않은 일이 적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1971년 10억 달러 수출을 기적으로 여겼다. 당시 야당은 바닥까지 다 긁어다 판다며 박 전 대통령의 10억 달러 수출을 맹비난했다. 그럴 즈음, 중동에서 손짓했다. 사우디, 리비아 등에서 한국 건설회사를 불렀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건설부 장관과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국내 건설사의 중동진출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사흘 뒤 두 장관은 차례로 독대하며 박 전 대통령에게 ‘중동진출 불가함’을 설명했다. 이유는 중동은 열사의 나라로 모래뿐이고, 모레 위에 튼튼한 건물을 짓기가 어려운데다 한낮 온도가 섭씨 60도까지 올라가 낮 노동이 쉽지 않다고 보고했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은 ‘경제를 키워 국민을 배불리 먹이자’라고 약속했던 정주영 전 현대건설 회장을 불러 이를 물었다. 정 전 회장은 다른 의견을 냈다. “각하, 이런 좋은 찬스가 어딨습니까. 사방이 모레라서 모레 걱정은 안 해도 되고, 한국 인부들이 막걸리를 달라고 할 테지만 이슬람국가라서 술을 마실 수 없어서 좋고요. 밤에는 선선해서 좋으니 낮에 자고 밤에 일하면 됩니다.” 박 전 대통령은 ‘중동진출’을 결정했고, 싼값에 석유를 들여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뿐만 아니다. IMF 외환 금융위기라는 숙명적 사명을 갖고 취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필자의 소속사였던 <대전일보>의 금 모으기 캠페인을 높이 평가해온 김 전 대통령은 5대 재벌 회장들과 오찬 회동을 자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5대 총수들에게 앞으로 IMF 관련, 우리나라 경제가 나아갈 길에 대해 의견을 내달라고 했다. 재벌총수 모두 훌륭하고, 국익과 관련한 나름대로 진단과 계획을 내놨다. 마지막 발언했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남달랐다. “대통령님, 지금까지 김 대통령님과 정부가 잘 도와주셔서 IT·반도체 등이 기반을 다져 앞으로 25년?, 한 30년? 은 먹고 살게 됐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먹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위험합니다. 그러니 대통령님께서 과학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과학기술로 먹고살아야 합니다.” 좋다, 싫다 내색하지 않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회동 끝나자마자 김 전 대통령은 “당장 내일 아침 8시에 총리를 비롯해 전 장관, 과기부 장관과 과학기술 단체대표 등을 오시라고 해서 ‘과학기술의 R&D 정책회의’를 갖자”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과 이건희 전 회장 역시 훌륭한 리더십을 보였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주년이 된다. 여러 가지 잘잘못을 놓고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평가가 극과 극이지만, 어쨌든 아쉬움이 큰 1년이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침체가 길게 이어진 상황에서 국내 정치와 외교면, 심지어 이태원 참사까지 적잖은 문제로 국론이 나뉘어있는 게 현실이다. 북핵 위협 속에 국내 정치마저 크게 흔들려 여야가 극단적 대결, 그리고 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의 잇따른 설화(舌話)까지 빈발해 지지율마저 저조한 현실이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고, 국민을 위해 협치하겠다는 약속을 허언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가가 폭등하고 민생은 팍팍해 더 나은 삶을 기대하던 사람들의 비난도 더 많아졌다. 국가 혈세를 아껴야 한다고 말만 떠들었지, 33조 원대의 적자에 있는 어느 공기업은 직원을 더 뽑고, 또는 승진시켜 다른 부처 연구소로 파견하고, 임금을 30%나 올려도 정부는 질책이 없다. 검사들을 요직에 앉혀 국정을 끌고 가는 정권으로 각인된 지도 오래다. 인명 경시, 패륜, 마약, 재난이 들끓는 윤 정부시대, 어디까지 희망가를 부를 것인가. 여야 구분 없이 머리를 맞대는 것을 포기한 듯한데, 여당 내에서도 갈리고 분열된 상태에서 나라 꼴, 윤석열 정부는 몇 점짜리일까.
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하여 1504년에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갑자사화 때 우리 고장의 인물 중에 수난을 많이 당한 한산이씨 인물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 고장(서천군) 화양면 추동리(사성골)과 표동에 연산군 10년(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때 목숨을 걸고 직언하여 화를 입은 대사간(大司諫) 이윤번(李允蕃 1460∽1538)의 묘와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의 막내아들 양경공 이종선(李鍾善 1368∽1438)의 두 번째 부인 안동 권씨(양촌 권근 딸) 묘가 자리하고 있고, 기산면 영모리 문헌서원 경내에는 양경공 이종선 묘가 자리하고 있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갑자사화로 인하여 수난을 당한 한산이씨 인물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목숨 걸고 직언한 대사간 이윤번 추동리(사성골)에 연산군의 폭정에 목숨을 걸고 직언한 대사간 이윤번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이윤번은 조선시대 초기의 문신으로 목은 이색의 장남 이종덕(李種德)의 고손자이다. 성종 11년(1480년) 진사시(進士試)-사마시(司馬試)와 성종 23년 (1492년)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은 연산군 때 사간원 정언(正言-사간원 정6품직)을 거쳐 중종 16년(1521년) 대사간(大司諫-정3품직 국왕에 대한 잘못된 것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관료)을 지냈다. 공(公)이 1504년 정언으로 있을 때 연산군 생모(生母) 폐비 윤씨(尹氏) 사건과 관련된 신하들에 대한 학살 등 갑자사화가 일어났을 때 이윤번은 국왕의 잘못된 일에 대하여 직언하였다. 연산군 3년(1497년) 5월 3일 왕조실록을 보면, 정언 이윤번이 어머니를 뵙고 돌아와서, 공신들의 외람된 관작에 대하여 잘못을 논하니 연산군이 비답하기를, “대간과 홍문관이 여러 번 건의를 올렸어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하물며 갑자기 한 사람이 하는 간쟁을 듣겠는가? 이 말은 늦었다” 하였다. 그러나 또 공이 아뢰길, “진실로 들을 만한 말이라면 천(賤)한 사람의 말일지라도 반드시 들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소신의 사사로움이 아니요, 곧 국가의 공론이오니 이 말을 늦었다 하지 마시고 빨리 명(命)을 거두소서” 하니 어찰로 비답하기를, “대간은 모두 공론을 주장하는 것이니 어찌 사적인 말이 있으랴. 지금 아뢰는 것은 명분은 공론이기는 하나 실로 의리에 합당하지 않다” 하며 들어주지 않았다. 다음날 4일 공이 또한 아뢰길, “지난번 어찰에 대간은 공론을 주장한다 하셨습니다. 전하께서 대간의 말이 이미 공론임을 아시면서도 개정(改正)하지 않으시니 아마 받아주실 뜻이 없는 듯합니다.”하니 국왕인 연산군도 물러서지 않았다. “옛날 중국 주나라 성왕(成王)은 어린 임금이었지만, 동생하고 놀면서 장난삼아 동생을 오동잎을 잘라, 진(晉)에 봉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도 국왕이 한 말이라 실천하게 되었다. 이러할진대, 지금 만일 도로 그 자급을 거둔다면 신하로써 어찌 임금을 믿는 자가 있겠는가?” 하니 공은 다시 아뢰길, “옛날 당나라 태종(太宗)은 지난 어진 국왕들이 한 일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서슴치 않고 고쳤습니다. 신(臣)은 전하를 요순(堯舜) 이상의 국왕으로 바라는데, 전하께서는 당태종(唐太宗) 이하로 자처하시려는 것입니까? 하였다. 전교하기를, “옛날 탕왕(湯王)이 걸(桀)을 치며 이르기를, 너는 불신함이 없어라 짐은 식언하지 않으리라 하였으니 어진 임금은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 대간의 의사를 보건대, 마치 처음에는 꼬리를 얻으려 하다가, 꼬리를 얻으면 또 머리를 얻으려는 것과 같다. 지금 만일 개정한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다 고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허락하지 않는다”하며 들어주지 않았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공신의 가자(加資-품계를 올려줌)에 관하여 논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자 사직하였다. 그러나 대사간에 복직을 명하였는데, 다시 사직하였다. 연산군 10년 (1504년) 4월 28일자 왕조실록을 보면, --중략 — 임사홍(任士洪) 등이 의논하길, “이윤번, 곽종범 등이 궁중의 일을 지레짐작하고 입에서 들어내었으니 신하된 자의 도리가 아님이다. 지금 풍속을 개혁하는 때이니, 중한 법으로 다스려 다른 사람들을 경계시켜야 합니다”하니 전교하기를, “무릇 국가의 일은 입이 있다 해서 다 말해서는 안 되고, 언관(言官)만이 말하며 언관이라 해도 또한 안 하며 모두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 정사에 관한 일이라면 의당 말해야 하지만, 궁중의 일 같은 것은 어찌 지레 짐작하고 말할 하는 것인가? 아래에 있는 사람이 윗사람을 믿지 않고 그 하는 일을 의심하여 엿보아 말을 한다면, 위에서도 아래를 믿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신징(申澄)과 곽종번(郭宗蕃)은 참수(斬首-목을 베다) 하고 이윤번 등 간관(諫官)은 처벌하지 않았으나 계속 간언하니, 연산군 10년 (1504년) 5월 7일 의금부로 하여금 이윤번을 잡아들여 신징처럼 즉일로 참수하는 형벌로 처리하도록 하였는데, 승정원이 아뢰길 신징은 죄를 자복한 뒤에 처벌하였는데 지금 이윤번은 국문하지 않고 극형으로 하리까? 하니, 우선 도로 가두게 하고, “죄가 신징과 같은 가를 알아보고 보고 하라” 하였다. 또한 연좌 죄를 적용 이윤번의 아들은 장(杖) 80대를 맞고 먼 지방에 노비(奴婢)로 보냈다. 그리고 2년 후 연산군 12년(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고 신원되어, 중종 16년 (1521년) 6월 6일 공은 대사간으로 제수되었다. 공의 딸은 안동권씨 권겹(安東權氏 權韐)에게 출가하여 외손자 권전(權佺)을 낳았고 권전은 지족당 권양(權讓)을, 권양은 수초당 권변(權忭)과 제월제 권성을 낳아 명문가의 집안이 되었다. 이렇듯 이윤번은 국왕의 정사에 잘못된 것을 목숨을 걸고 직언을 다 하였으니 언관(言官) 중의 언관이었다. 2. 갑자사화로 실전된 이종선과 부인 안동권씨 묘 양경공 이종선의 묘는 기산면 영모리 문헌서원 경내 목은 이색 묘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이종선의 첫째 부인은 찬성사 권균(1464 ~1526)의 딸로 아들 이계주(李季疇)를 낳고 일찍 죽었고, 이계주는 사육신 이개(李塏)의 부친이다. 두 번째 부인은 찬성사 權鈞(권균)의 7촌 간인 양촌 권근(權根 1352~1409)의 큰딸로 4남 2녀를 낳고 1456년에 죽었다. 화양면 추동리(표동)의 묘소가 바로 둘째 부인 ‘안동권씨’이다. 이종선의 묘와 둘째 부인 안동권씨의 묘소는 1504년 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공의 손자 이파(李坡 1434~1486년)가 부관참시(剖棺斬屍-무덤 속의 시신을 꺼내 목 자름)의 형벌을 받을 때 연좌제에 해당되어 봉분을 파헤쳐 평평하게 만들어 버렸고, 오랫동안 봉분을 쌓지 못하고 있었다. 성종이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尹氏)에게 사약을 내릴 때 공의 손자 이파가 예조판서로 있었다. 그리고 연산군이 즉위하여 이 사건을 문제 삼아 당시의 재상과 언관들에게 죄를 물을 때 이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죄를 물을 수 없었으나, 연산군은 죽은 사람의 무덤의 시신을 꺼내 분풀이로 한명회, 정창손, 이파 등 122명을 부관참시하였고 처형과 귀양의 형벌을 받은 자가 239명에 이른다. 이 사건이 바로 甲子士禍(갑자사화)다. 양경공도 연좌제에 해당되어 형벌로 봉분이 제거되었는데, 반정으로 중종(中宗)이 즉위하였어도 오랫동안 봉분을 회복하지 못했다. 공의 후손인 죽천 이덕형(李德泂)이 지은 죽창한화(竹窓閑話)의 기록을 보면, 어성 신담(申湛 1519~1595)의 외손자인 죽천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은 고조부인 이유청(李惟淸 1459~1531)이 꿈속에 양경공이 나타나 말하길, “내 집이 헐어진지 이미 오래되어 바람과 비를 가리지 못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공만이 내 집을 지어줄만하니 공은 잊지 말도록 하라”는 현몽이 있어 꿈이 하도 괴이해서 양경공의 종손인 이질(李秩)에게 말하니, “양경공은 이파(李坡)의 조부이기 때문에 연산군의 갑자사화로 인하여 함께 묘 봉분이 헐리게 되었으며 자손이 미약하고 묘소가 한산에 있기에 아직 고치지 못하였기에 현몽하게 된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유청은 태종 둘째 아들 효령대군 이보(孝寧大君 李補)의 외손자이다. 의정공 이유청은 “이런 일로 보면 사람의 정백(精魄-죽은 혼백)이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과 또한 무덤은 죽은 사람의 집이 되는 것이 분명하니 자손 된 자는 먼 조상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하지 못할 것이요 무너진 무덤은 고쳐 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라 하고, 1528년(양경공 사후 90년경) 친자식들을 보내어 봉분을 다시 쌓고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양경공 부인 안동권씨의 묘 봉분은 다시 쌓지 않아 오랜 세월이 흘러 실존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이파(李坡)의 사위인 어성 신담(申湛)은 부친 신영원(申永源)의 묘소로 점지해둔 곳에 치표하기 위해 터를 파는 과정에서 땅속에 묻혀 있던 안동권씨의 지석을 발견하게 되어 실전되었던 안동권씨의 묘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어성 신담의 부친 신영원 묘소의 치표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안동권씨의 묘소는 되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성 신담의 부친 신영원은 한산이씨 이윤수(李允秀)의 사위이기도 하다. 안동권씨 지석 발견으로 신영원의 묘는 서쪽편 언덕으로 변경되어 자리를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