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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붉은 순정, 당신의 반려(伴侶)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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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숲의 눈부신 진화… 박제된 유산에서 살아 숨 쉬는 ‘반려 자연’으로
거대한 문화와 모험의 캔버스 되다…지역과 대중이 함께 쓰는 새로운 500년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서해의 모진 해풍을 온몸으로 견뎌내고도 기어코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숲.

 

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바다를 굽어보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이 천연기념물이 이제 ‘관람’의 대상에서 ‘관계’의 주체로 새로운 생명력을 뿜어낸다.

 

단순히 울타리 밖에서 바라보며 감탄하는 수동적인 유산의 시대는 끝났다.

 

서천군이 오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동백숲을 부탁해!’ 프로그램은 자연유산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매혹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도발이다.

 

생생국가유산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추진되는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참여형 자연유산’으로의 확장이다.

 

그동안 천연기념물은 그 희소성과 보존의 필요성 때문에 대중의 접근이 제한된 ‘유리관 속의 화석’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서천군은 이 견고한 인식의 벽을 허물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립생태원과의 협력을 통해 탄생한 ‘짝궁나무(반려목)’ 제도다.

 

방문객은 수백 년의 풍상을 견딘 숲속의 동백나무 중 하나와 인연을 맺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생육 상태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다.

 

나아가 그 나무의 후계목을 입양하고 보전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일회성 관광객이 아닌 숲의 생명력을 함께 연장하는 ‘공동 보호자’로 거듭나게 된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유산을 지켜내는 가장 현대적이고 능동적인 보존의 방식이다.

 

동백나무숲의 변신은 생태적 교감에서 멈추지 않는다. 숲은 그 자체로 오감을 깨우는 문화 향유의 공간이자 흥미진진한 모험의 무대로 확장된다.

 

‘동백숲에 놀러와!’는 붉은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화기의 정취를 예술로 승화시킨다.

 

자연이 내어준 공간에서 공예와 체험, 교육이 어우러지며, 숲을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닌 영감을 주는 문화의 산실로 변모시킨다.

 

‘동백숲을 모험해!’는 500년 숲이 품은 신비로운 설화와 생태적 특성을 미션형 역할수행게임(RPG)으로 풀어냈다.

 

정적인 공간에 서사(Storytelling)와 놀이(Gamification)를 부여하여, 청년과 미래 세대들이 자연유산의 가치를 머리가 아닌 온몸의 짜릿한 감각으로 체득하게 만든다.

 

군의 이번 시도는 지자체와 국립생태원이라는 전문기관, 그리고 대중이 완벽한 삼각편대를 이루어 자연유산의 공공적 가치를 극대화한 모범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보존이라는 명목하에 유산을 대중과 격리하는 대신, 대중의 애정과 참여를 유산의 가장 든든한 보호막으로 삼은 군의 혜안이 돋보인다.

 

유환숭 문화체육과장은 “마량리 동백나무숲은 서천의 시간과 풍경, 삶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유산의 가치가 미래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활용 기반을 넓혀가겠다”라고 전했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마량리 동백나무숲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는 풍경이 아니다. 당신의 발걸음과 온기를 기다리는 살아있는 동반자다. 500년 시간을 품은 붉은 동백이 당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 매혹적인 부름에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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